‘쇼룸’
김의 지음·민음사 펴냄
소설집·1만2천원

2014년‘한국경제’ 청년신춘문예에 장편소설‘청춘 파산’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의경(40) 작가의 첫 번째 소설집‘쇼룸’(민음사)이 출간됐다.

등단작‘청춘 파산’을 통해 김 작가는 관념이 아닌 실재로서의 신용불량자, 파산자를 그려내며 한국문학에 낯설고 새로운 서사를 선사했다. 첫 번째 소설집‘쇼룸’을 통해 물건으로 설명되는 인간의 삶,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자발적이고 성실하게 소비의 노예가 돼 있는 공동체의 모습을 묘파한다. 계란절단기나 레몬즙짜개, 크노파르프 소파와 헬머 서랍장, 이케아와 다이소, 고시원과 전세 보증금으로 확인 가능한 얇고 슬픈 정체성. 소설집의 제목인‘쇼룸’은 빛나는 대상을 향해 소설 속 인물들이 지니는 투명한 욕망을 아우른다.

‘합리적인 가격의 조립식 가구’의 대표적 브랜드 이케아는 김의경의 소설집 ‘쇼룸’에서 주요한 공간으로 등장한다. ‘쇼룸’속 등장인물들의 소비는 더 높은 가격대의 고급 가구 브랜드로 올라가지 못하고 이케아 단계에 머무른다. 그러나 머무르는 이들의 양상이 전부 비슷한 것은 아니다. 김의경이 그리는 이십 대, 청춘은 이케아 피플 중에서도 위축돼 있다. 수록작 ‘이케아 룸’의 ‘소희’는 열여덟 살 연상의 유부남과 연애 중이다. 또래 남자를 사귀는 친구들이 선물로 “목도리나 싸구려 목걸이”를 받을 때 자신은 “해외여행 혹은 오피스텔”을 받는다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오빠’와의 관계를 정당화하지만 그 관계에서 선물이 아닌 바로 자신이 “싸구려”라는 생각에 괴로워한다. 오빠가 마련해 준 공간이 있지만 그곳에서 소희는 오빠의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케아 소파 바꾸기’의 사라, 미진, 예주는 ‘가장 싼 것’을 찾아 이케아를 헤맨다. 그들은 19만9천원짜리 소파를 사지 못하고 9만원짜리를 산다. 1만4천900원짜리 스탠드를 내려놓고 5천원짜리를 담는다. 자본은 없고 시간뿐이므로, 그들의 존재증명은 기다림과 최저가 상품으로만 가능하다. 작가에게 이케아는 청춘이 지닌 애매하고 불안한 공기까지 포착할 수 있는 의미심장한 공간이다.

김의경의‘두 사람’들은 로맨틱하기보다 이코노믹하다. 소비의 규모와 경제적 가능성이 그들의 관계를 좌우한다. 그들은 ‘살기 위해’ 위해 여러 가지를 포기한다. ‘물건들’의 연인은 결혼식과 혼인 신고를 생략하고 동거를 한다. ‘세븐 어 클락’의 부부는 파산 이후 집 안에 오래 놓고 쓸 가구를 일절 들이지 않는다. 작가 부부가 등장하는 ‘쇼케이스’에서 남편인 태환은 아내인 희영이 글을 쓸 수 있도록 자신은 글쓰기를 미루고 정육점에서 일하며, 그들은 결혼식과 출산을 무기한 연기한다. 결혼식, 출산, 내 집 마련 등 구매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을 멀어지게 하고, 아주 작지만 가능한 소비는 그들을 가까워지게 한다. ‘쇼케이스’와 ‘세븐 어 클락’의 부부는 몇 년 만에 필요한 가구를 사기 위해 이케아에 간다. 함께 가구를 고르는 순간만큼은 서로를 부부라고 인식한다. 삶에 대해, 옆에 선 타인에 대해 증오와 권태와 연민이 뒤섞인 채로 그들은 헤어지지 않고 살아간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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