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갈래?
1. 친구들과 즐기는 제주섬

▲ 협재해수욕장에서 바라본 비양도가 손에 잡힐 듯하다. 제주의 바다 빛깔은 가을은 물론, 사철 내내 아름답다.

한국에서도 연가(年暇)의 사용이 여름 한 시즌에만 몰리지 않고 있다. 자신이 필요한 시기에 휴가를 사용할 수 있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는 증거다. 투명한 햇살이 구슬빛으로 환한 10월. 가을의 낭만을 제주도에서 즐기려는 이들이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익숙한 음식과 눈에 익은 산과 바다의 풍경, 여기에 해외처럼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겪지 않아도 되는 제주로의 가을여행이 적지 않은 이들의 관심사다. 가족과 연인, 친구와 함께 해도 좋고 요사이 트렌드가 된 ‘나홀로 여행’도 어색하지 않은 아름다운 섬. 기자가 겪은 ‘친구와 함께’ 그리고 ‘혼자 떠나는’ 제주 여행의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행복한 가을 휴가’를 준비하는 독자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한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세상이 강제하는 규범과 틀을 거부하는 경우가 흔하다. 매일 같은 업무와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오늘의 일상은 세상 누구에게나 “지겹다”는 한숨 섞인 넋두리를 하게 만든다.

사실 자신의 삶에 대한 회한과 하는 일에 관한 회의는 누구에게나 보편적이다. ‘정말 좋아서 사는 사람’은 세상에 없거나 몹시 드물다. 그중에서도 글을 쓰는 것으로 밥을 버는 이들은 항상 발 딛고 선 땅에서 날아가고 싶어 한다. 지향점 불분명한 비상(飛上)의 욕망.

도시에서는 바다를 꿈꾸고, 바다로 가서는 또 다른 이상향을 그리워하는 대책 없는 철부지들이 바로 소설가와 시인이다. 몇 해 전. 그 철부지 중 하나인 소설가가 또 다른 철부지 둘에게 ‘매혹적인 일탈’을 권유했다.

“제주도 갈래?”

장편소설 ‘아버지’를 써서 수백 만 권을 판매하고 책을 낸 출판사가 빌딩을 올리게 만든 김정현. 조직폭력배와 도둑을 잡던 강력계 형사에서 작가로 이름을 바꾼 그가 소설가 J와 형편없는 시집 한 권을 낸 기자에게 제주로의 여행을 권유했다.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거기로 가서는 ‘육지’에서의 지루한 일상을 버리고 ‘즐거운 제주도민’으로 살고 있는 또 다른 소설가 Y를 만나기로 전화를 넣어뒀다. Y와 J는 한 살 터울로 문단에서 유명한 막역지우(莫逆之友)다.

“제주로 태풍이 몰려온다”는 기상청의 예보가 협박처럼 들려오던 날. 그 협박을 무시하고 비행기가 이륙했다. 기내에 오르자마자 환해지는 얼굴들. 일행 셋 모두는 전생이 길짐승이 아니라 날짐승이었던 듯 땅에서 발을 떼자마자 즐거워하고 있었다. 일상탈출의 유쾌함이 온몸을 흥분시키던 주말 오전이었다.

▲ 제주 바다에서 세월을 낚는 외로운 낚시꾼.
▲ 제주 바다에서 세월을 낚는 외로운 낚시꾼.

◇ 지상에서 꿈꾸는 천상... 제주도를 향해

침대에서 담뱃불에 타죽은 오스트리아 시인 잉게보르크 바하만(Ingeborg Bachmann·1926~1973). 그녀는 “추락만이 인간이 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했다. 맞다. 추락하는 자만이 비상의 공포와 희열을 알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추락하더라도 지금 ‘이곳’이 아닌 미지의 ‘다른 곳’으로 가고자 열망하는 사람들. 여행은 그런 인간의 욕망을 해소시키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 아닐까.

그래서였다. 그날 1시간이 채 못 되는 짧은 비행시간 속에서 승무원이 가져다준 커피의 향은 그 어느 때보다 향기로웠다. 공항에서 만나는 익숙하지 않은 열대의 풍경 또한 반가웠다.

제주 출신의 소설가 현기영(77)의 ‘순이삼촌’과 ‘바람 타는 섬’을 읽었던 건 열여덟 시절. 그 아득한 기억을 떠올리며 섬세해지는 마음을 추스를 사이도 없이 서정적인 문장과 매혹적인 문체로 독자들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소설가 Y가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문학평론가 김윤식(82)은 Y를 향해 “나는 그의 소설 속에서 존재의 시원(始原)을 보았다”고 극찬한 바 있다.

우리는 Y의 ‘화끈한’ 운전 실력에 놀라워하며 제주 이곳저곳을 쏘다녔다.

“얼마 전에 한적한 제주 내륙 도로를 달리다가 시비가 붙어 창문을 내리고 목소리를 높였어요. 근데 상대방이 ‘새 책은 언제 나와요’라며 웃더군요. 그때 이후론 어지간하면 양보운전 하려고 합니다”라는 시시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한라산을 제외하고는 제주에서 가장 높다는 송악산 꼭대기에 올라 대한민국 최남단 가파도와 마라도를 안타까운 눈길로 마주한 순간. 일행은 할 말을 잃고, 역사를 압도하는 풍광의 아름다움에 취했다. 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목초지를 내려다보며 먹었던 데친 문어와 동동주의 맛이라니…. 술이 아니라 제주 바다와 푸른 초원이 우리를 취하게 했다.

◇ 마라도, 가파도, 송악산, 서귀포 그리고 쓸쓸함

한국의 어떤 도시와도 다른 환경 탓에 폭우와 햇살이 불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제주도를 남북으로 가로질러 서귀포항으로 향했다. Y는 변덕스런 제주의 날씨마저 자랑했다. “여긴 비가 오면 보통 이렇게 오더군.” 말끝에 달리는 웃음이 그가 온전한 제주 사람이 돼있음을 짐작케 했다.

도착한 서귀포항. 발령된 폭풍주의보 탓에 무리 지어 정박한 어선들. 그 어선들마다에 걸려있는 만선(滿船)을 기원하는 깃발. 깃발의 미세한 떨림이 한 인간의 전 생애를 아프게 돌아볼 수도 있게 한다는 생경한 깨달음에 가슴이 시렸다.

왜 우리는 사람들 사이에 살면서도 이토록 외로운가? 왜 인간은 결국 각각의 섬일 수밖에 없는가?

쓸쓸한 마음은 사내 넷의 발걸음을 술집으로 향하게 했다. 길을 되짚어 올라와 도착한 제주항. 바다를 향한 통유리창이 시원스런 횟집에 들었다. ‘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중 하나’라는 제주의 저녁놀이 핏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제주 바다가 선물한 도미와 보말, 등이 붉은 해삼과 옥돔구이, 거기에 성산포에서 태어났다는 인심 좋은 주인이 “남자들에게 좋다”며 서비스로 가져다준 청각으로 차려진 술상. ‘한라산물 맑은 소주’의 비워지는 속도가 빨랐다. 이윽고 찾아온 만취. 어느새 바다는 먹물 닮은 어둠으로 가득했다.

▲ 제주에선 푸른 초원을 뛰노는 말도 볼 수 있다.
▲ 제주에선 푸른 초원을 뛰노는 말도 볼 수 있다.

◇ 제주 밤바다, 그가 물었다 “당신도 외롭지요?”

자리는 Y의 단골집이라는 제주 시내 한복판 재즈카페로 옮겨졌다. 페르시아 고양이를 안고 있으면 잘 어울릴 것 같은 검은색 벨벳드레스를 입은 마담이 캐롤 키드(Carol Kidd)의 ‘웬 아이 드림(When I Dream)’을 멋들어지게 불렀다.

어두운 카페를 울리는 피아노와 색소폰 소리. 그 견딜 수 없는 분위기에 젖은 소설가 Y가 기자를 돌아보며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홍형도 사는 게 외롭지요?”

그때서야 알 수 있었다. 김윤식을 포함한 문학평론가들이 상찬한 Y의 소설이 지닌 매력을. 그것은 다름 아닌 ‘뼈가 아플 정도의 외로운 문장’이었다.

결국 문인이란 자신의 상처를 덧내 타자를 위로하는 존재, 소설가란 인간으로선 견디기 힘든 거대한 절망과 고독을 짊어지고도 웃는 얼굴로 살아가는 슬픈 사람이 아니었던가.

제주에서의 두 번째 날. 숙취는 끈질기고 지독했다. 먼 바다에서 물을 끌어다 만들었다는 노천 해수탕에 잠시 몸을 맡긴 후 서귀포시에 자리한 이중섭기념관을 향했다.

“생전의 예술적 영예란 덧없는 허깨비”란 명제를 자신의 온몸으로 보여준 불우했던 화가의 삶이 고스란히 새겨져있는 현장.

가난 탓에 아내를 친정으로 보내고, 제주바다의 암초처럼 외롭게 연명했던 화가의 그림자가 현실인양 앞으로 다가섰다. 개펄을 기어 다니는 게와 해초로 먹을거리를 해결했던 빈곤. 이중섭 또한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때다. 전날 밤 Y가 던진 물음이 다시 떠오른 것은. “홍형도 외롭지요?”

대답해주고 싶었다. 자본의 절정 프랑스 파리를 떠나 아프리카에서 풍토병으로 다리를 잘라야 했던 시인 아르튀르 랭보(Arthur Rimbaud·1854~1891)의 문장을 인용해. “지상에 외롭지 않은 영혼이 어디 있으랴.”

돌아가고 싶지 않던 일상을 향해 억지로 발을 옮기는 길. 제주공항으로 가는 내내 모두는 말이 없었다.

심장 속 미망(迷妄)을 온전히 떨치지 못한 가여운 영혼들. 얼마나 더 살아야 “외롭지요”라는 물음에 “그렇지 않소”라고 답할 수 있을지. 그런 날이 올 수는 있을지….

안개를 뚫고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북쪽을 향해 날았다. 제주도에서 발을 떼는 바로 그 순간, 다시 제주가 그리워지고 있었다. 바다, 파도, 그리고 일생 몸의 일부로 안고 살아야할 외로움까지가 그리워지고 있었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사진제공/구창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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