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의 준말인 ‘내로남불’이란 신조어가 대세다. 주로 남이 할 때는 비난하던 행위를 자신이 할 때는 변명을 하면서까지 합리화하는 모습을 지칭하는 말로 ‘남에겐 엄격하나 자신에겐 자비로운 태도’(자기합리화)를 일컫는다. 특히 진실여부와는 상관없이 서로 주장이 옳다고 목청을 높여야만 주목받기 쉬운 정치판에서는 ‘내로남불’현상이 넘쳐난다. 국회 국정감사가 시작된 10일 오후 국방부 국정감사장에서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야당에 대해 ‘내로남불’이라며 공세를 펴고 있었다. 국방부 국정감사에 나선 민홍철 민주당 의원이 남북군사합의서의 GP 철수와 국군 작전권에 관련, “과거 2005년 7월 박진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GP 철수는 우리 군을 취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 현대 과학에 기반을 둔 한국군의 자신감에 기반한다. 또 논의의 핵심은 GP의 숫자가 아닌, DMZ 비무장화로서 논의의 시작이 상호 군비축소’라고 주장했다”며 “지금 야당의 지적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이런 내용”이냐며 비판하고 나섰다. 최재성 민주당 의원도 “과거 정부의 군비통제계획서를 열람하고 이번 (남북군사)합의 사항과 너무나 똑같아 깜짝 놀랐다”며 “공중 충돌 예방과 방지 및 GP 철수 내용은 과거 남북군사합의서에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야당인 자유한국당이 현 정부가 북측과 군사분야 합의를 한 데 대해 국가안보를 위험에 빠뜨린 처사라며 공세를 펴자 여당이 최근의 군사분야 합의가 과거 남북군사합의서를 근거로 한 것이라며 반격을 펼친 것이다. 야당인 자유한국당도 여당의 ‘내로남불’행태를 꼬집었다. 자유한국당 전희경 의원은 교육부 산하기관 기관장 및 상임감사 등 주요 보직 임명 현황 자료를 인용하면서 교육부 산하기관 및 유관기관 고위직에 문재인 정부와 코드를 같이하는 이른바 ‘캠코더’(캠프, 코드, 더불어민주당)인사가 넘친다고 지적했다. 정부 산하기관장 등 고위직 자리를 정권의 전리품으로 인식하는 구태가 이전 정부와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이었다.

‘내로남불’시비가 가장 뜨거웠던 건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에 대한 인사청문회 현장이었다. 유 부총리 자신이 위장전입 공방의 역사에 등장하기에 더욱 뜨거운 논란을 일으켰다. 지난 2007년 열린우리당 부대변인이었던 유 부총리는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에 대해 “위장전입 이유가 자녀 교육문제 때문이었다니 납득할 수 없고 기가 막힐 뿐”이라며 “부동산 투기가 아니니 괜찮다는 것처럼 해괴한 논리가 어디 있는가”라고 신랄한 논평을 낸 바 있다. 11년 전 논평은 그대로 부메랑이 돼 유 부총리를 때렸다. 유 부총리 역시 지난 1996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딸의 주소를 실거주지가 아닌 서울 정동의 대한성공회 성당으로 이전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유 부총리는 부동산 투기나 명문교 진학을 위한 부정한 목적은 아니었다고 해명했지만 ‘내로남불’ 비난을 피할 수는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위장전입 △논문 표절 등 5대 비리 관련자의 고위공직 원천 배제를 약속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발표한 인사청문회 대상 가운데 상당수가 위장전입 및 세금탈루 논란에 휩싸여 국회 인사청문보고서조차 채택하지 못한 채 임명을 강행해야 했다. 유 부총리의 경우 ‘의원불패’의 오랜 관행조차 깨지는 참사를 당했다. 문 대통령은 올해초 고(故) 신영복 선생이 쓴 ‘춘풍추상(春風秋霜)’ 액자를 각 비서관실에 선물했다. 춘풍추상은 중국 채근담에 수록된 말로 ‘대인춘풍(待人春風) 지기추상(持己秋霜)’의 준말이다.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과 같이 부드럽게 대하고 자신을 대할 때는 가을 서리처럼 엄격하게 대해야 한다’는 뜻이니 내로남불의 반대어로 쓰일 만한 사자성어다. ‘내로남불’의 정치풍토가 판을 치니 문 대통령의 ‘춘풍추상’이 맥을 못추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