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장에 나온 외교수장의 오락가락하는 정책답변 가운데 ‘5·24 조치 해제 검토’ 대목이 튀어나와 정부의 대북정책 과속에 대한 국민적 염려가 폭증하고 있다. 이성적인 대응이 지난한 북한과의 협상에서 정부가 섣부른 확신을 갖고 막 내어주는 전략은 위태롭다는 것이 걱정의 요체다. 북한에 양보하는 모든 조치는 우선 우리 국민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 맞다. 남북교류의 진정한 목표달성을 위해서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여론이다.

10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외교부 국정감사에선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5·24조치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강경화 외교부장관이 “해제를 관계 부처와 검토 중”이라고 한 뒤 나중에 번복해 도마 위에 올랐다. 강 장관은 또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지난달 남북 군사합의에 불만을 표시했다고 시인한 뒤 이를 고쳐 말해 논란을 덧냈다.

5·24 조치는 지난 2010년 이명박 정부 당시 천안함 사건에 대한 대응으로 정부가 내놓은 대북 제재를 위한 행정조치다. 이 조치 후 사실상 남북교류가 중단됐다. 장관의 ’해제 검토’ 발언에 대한 반향이 커지자 강 장관이 뒤늦게 “범정부적인 검토는 아니다”라고 말을 뒤집었고, 외교부 당국자도 정부 차원의 본격적인 검토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또 자유한국당 정진석 의원이 이날 “한미 외교장관 통화에서 남북 군사합의서를 두고 폼페이오 장관이 격분해 강 장관을 힐난했다”는 외신보도와 관련 사실여부를 질의하자 강 장관은 “맞다”고 즉답했다. 그러나 민주당 이수혁 의원의 통화시점을 묻는 질문에 “군사합의서 관련 통화는 평양정상회담 이전이었다”며 앞선 답변을 번복했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지난 8일 방북은 당초 목표인 ‘영변 핵시설의 신고·검증과 핵무기·핵물질·핵시설의 리스트 제출’에는 접근조차 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캐나다군 중장인 웨인 에어 유엔사 부사령관은 한 세미나에서 “북한이 왜 그렇게 열심히 종전선언을 추진하는지 의문을 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엔군사령관을 겸하게 될 로버트 에이브럼스 신임 주한미군사령관 지명자는 미 의회 청문회에서 “비무장지대(DMZ) 내 모든 활동은 유엔사 소관”이라며 9·19 남북 군사합의에 대해 불편한 심정을 드러낸 것도 허투루 읽을 수 없는 대목이다.

평화구축을 위한 남북교류 확대는 바람직하다. 그러나 모든 협상이 그러하듯, 어느 일방의 과속은 위험하다. 애초의 목표였던 ‘불가역적 북핵 폐기’는 한걸음도 떼지 못한 채 남한의 ‘불가역적 무장해제’ 도박만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는 비판을 귀담아들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미국과의 공조가 깨진 듯한 난기류만큼은 차분히 짚어가면서 한 치도 허점이 없도록 관리하는 것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