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길 택

집 지었던 해에 처음 알아낸 고춧내

이젠 그 고춧내 없인

가을이 지나가질 않는다

갓 따온 고추 아랫목에 펼쳐 두고

뜨끈뜨끈히 불지펴 놓으면

솔솔 피어오르는 고춧내

밤새워 맡을 수 있었다

한 사흘 그렇게 숨을 죽여

볕에 내말릴 때까지

달디단 고춧내로 멱 감다 보면

꾸물꾸물 기어나온 고추벌레들

이불 위로 올라와 함께 잠잤다

산골마을 분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틈틈이 텃밭을 일구며 참 스승의 길을 걸으며 시를 썼던 시인은 오래 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고추와 함께 잠들고 고추벌레와 이불을 같이 쓸 만큼의 공력을 들이는 시인은 우리 살아가는 세상사에도 어떻게 살아가야하는 지를 넌지시 일러주고 있는 것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