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래시조시인·수필가
▲ 김병래시조시인·수필가

얼마 전 우리나라 대통령을 위시한 방북단 일행이 평양에 가서 관람한 북한의 집단체조 공연에 대해서 말들이 많다. 그 규모와 기량에 감동해서 눈물을 흘렸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이들을 얼마나 혹사했으면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싶어 소름이 끼쳤다는 사람도 있었다.

북한의 집단체조와 카드섹션은 세계 최대로 기네스북에도 올랐지만, 아이들을 체제선전과 외화벌이 수단으로 혹사한다는 비판에 몰려 몇 년간 중단을 했다가 이번에 다시 재개했다고 한다. 전체 10만여 명의 학생들을 6개월에 걸쳐 혹독하게 훈련하는 과정이 아동학대와 인권유린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지난여름의 유난했던 폭염에도 집단체조 훈련에 동원됐을 아이들의 고통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그런 훈련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탈북자의 말에 의하면 실신해서 쓰러지거나 억지로 소변을 참느라 방광염에 걸린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훈련기간 중에 정상적인 학교 수업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오줌이 마려울까봐 물도 제대로 마시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남한에서도 올림픽이나 전국체전 등에서 각종 매스게임을 하지만 목적이나 과정이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얘기다.

방북단의 일원이었던 한 중견시인은, 연도에 나와서 열렬히 환영하는 북한 주민들 표정에서 진심을 보았다고 했다. 일사불란하게 한복을 차려입고 붉은 모조꽃다발을 흔들며 목이 터져라 장군님 만세를 외쳐대는 주민들의 열광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면, 그게 어찌 감동을 받을 일인가? 조금이라도 거슬리면 공개처형도 서슴지 않고 고모부와 친형까지도 죽이는 포악한 독재자를 절대존엄으로 떠받드는 광경을 보고도 느낀 점이 고작 그것이었다니, 명색이 시인이란 사람의 지극히 피상적인 현실인식에 실망을 넘어 아연해진다.

언젠가 북한의 어린 아이들이 춤추고 노래하고 악기를 연주하는 공연을 텔레비전으로 보고 섬뜩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어린 것들을 얼마나 혹독하게 훈련을 시켜야 저 지경에 이를 수가 있을까. 더욱 소름끼치는 것은 그 아이들의 음성이나 표정까지도 하나같이 똑같게 만들어 놓은 거였다. 그것은 천진한 동심의 아이가 아니라 고도의 기능을 입력해놓은 로봇이거나 꼭두각시의 모습이었다. 편하고 자유로워야 할 어린 영혼들을 그렇게 세뇌하고 혹사한다는 건 결코 감동하고 찬사를 보낼 일이 아닌 반인륜적 죄악일 뿐이다,

지난 70년 동안 김일성 일족의 세습 독재는 북한 주민들을 모조리 꼭두각시로 만들어 놓았다. 유아기부터 일체의 다른 정보를 차단하고 오로지 김일성을 위대한 어버이 수령이자 신으로 받들어 모시는 세뇌교육을 시켰으니 어떻게 정상적인 자아가 형성된 인간일 수가 있겠는가? 얼핏 보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유분방하게 자란 아이들보다 덜 때가 묻은 순수함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에만 현혹되어 실상과 본질을 놓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그래서 거짓된 선전선동이나 포퓰리즘에 곧잘 휩쓸리는 게 민심이다. 가슴이 미어지는 연민과 공분으로 바라보아야 할 대상인데도 감동과 감격으로 보았다는 사람들 역시도 알게 모르게 학습이 된 그릇된 이념이나 편견의 꼭두각시라는 생각이다. 남쪽에도 그런 꼭두각시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이 놀랍고 씁쓸하다.

꼭두각시란 팔 다리에 실을 달아서 조종하는 인형을 말한다. 한자어로는 괴뢰(傀儡)라고 하며, 남한에서는 북한군을 괴뢰군이라 하고 북한에서는 남한 정부를 미제의 괴뢰정부라고 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무엇에 홀린 듯 남한에서도 북한 주민이 모조리 꼭두각시가 될 수밖에 없는 사정을 간과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유엔의 대북제재로 궁지에 몰린 김정은을 밖으로 끌어낸 것까진 좋은데, 그것을 마치 독재자가 개과천선이라도 한 양 착각을 하고 호들갑을 떠는 행태도 개탄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