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프스 산맥에 위치한 산골마을이다. 우리 동네처럼 이곳의 산도 높고 골짜기도 좁다. 이곳의 사람들도 아웅다웅 살 것이다. 사람의 삶이란 늘 그렇고 그런 것이므로.
▲ 알프스 산맥에 위치한 산골마을이다. 우리 동네처럼 이곳의 산도 높고 골짜기도 좁다. 이곳의 사람들도 아웅다웅 살 것이다. 사람의 삶이란 늘 그렇고 그런 것이므로.

1.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친구 재식이는 발령이 나기를 기다리며 집에 머물렀다. 그 때가 4월쯤이었으니까 내가 방학하기까지 두 달 정도를 고스란히 혼자 집에서 보낸 셈이다. 원체 조용한 친구였는데, 술을 마시기 전부터 녀석은 들떠 있더니 술기운이 돌자 더 수다스러워졌다. 공무원이 된다는 게 좋긴 좋구나, 했더니만 그게 아니었나보다. 부산에서 공부를 하다가 시골의 집으로 돌아온 녀석은 처음엔 조용하고 아늑했다고 한다. 그게 딱 두 주 가더란다. 그 후로는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무료해졌다고.

낮에는 논이든 담배 밭이든 일거리라도 있지만, 밤에는 아홉 시만 되면 불이 꺼진다. 그때부터 고요가 쌓이기 시작해서 적적해지고 막막해진다. 그 적막이 낯설어 잠이 들 수 없게 되면 동네 주위를 어슬렁거리게 되고 그러다 보면 알게 된다. 너무 큰 고요와 감당할 수 없는 적막은 오히려 요란한 소리를 낸다는 것을 말이다. 나도 두어 달 집에 있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정말 입대하는 것이 즐겁기까지 했을 정도다.

이 동네를 떠나간 사람들 역시 그런 적막을 느꼈던 걸까?

2.

우리 동네 이름은 골짜기에 터를 닦았다 해서 골터다. 그리고 터가 되지 않은 곳에도 곳곳의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 동네 뒷산은 해발이 945m나 되지만, 덕유산 자락이라 천 미터가 되지 않는 산은 산 축에도 끼지 못한다. 그래도 우리 동네 사람들은 그 산을 집덫골 날망이라 부른다. 정확히 집덫골인지, 짚덧골인지 알 길이 없다. 나는 그저 집채만한 호랑이를 잡으려고 집채만한 덫을 놓은 곳이라고 생각해왔으니, 만약 누군가 묻는다면 집덫골이라고 말해버릴 작정이다.

우리 동네는 한 때 쉰 채도 더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우리 동네의 경계를 알게 되었을 때쯤 해서는 다섯 채 밖에 남지 않았다. 우리 집 뒤에는 하경이네 할매와 윤미네 할매가 살았었다. 서로 이웃한 두 할머니의 운명은 엇비슷했다. 이십여 년 전에 윤미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경이네 할아버지도 돌아가셨다. 윤미네와 하경이네는 윤미와 하경이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부산이니 서울로 이사를 갔지만, 손자들 없이도 그네들은 손자들의 할머니로 불렸다. 그러니까 하경이네 할매는 하경이 할매였다. 늘 술에 취해 지냈던 하경이 할매가 치매 증세를 보여 양로원으로 떠날 때 당신은 되려 윤미 할매를 걱정했다고 한다. 하경이 할매가 떠나고 윤미 할매는 아픈 곳도 없이 잠들어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하경이 할매도 그 해를 넘기지는 못했다.

이제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은 세 채가 고작이다. 성진이네, 정엽이네, 그리고 우리 집이다. 공교롭게도 성진이, 정엽이, 나는 동갑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 삼총사라 불렸지만, 지금은 명절에조차 만나기 어렵다. 공무원이 된 재식이는 옆 동네에 살았는데, 녀석을 달타냥처럼 끼워서 사총사를 만들어보려 했지만, 녀석은 수진이와 은주랑 노는 것을 더 좋아했다. 하긴 녀석도 그 여자애들 둘을 합치면 삼총사이긴 했으니까.

3.

윤미 할매네와 하경이 할매네가 동네의 끝인데 위로 더 올라가면 붉은 언덕이라는 뜻의 ‘불분디기’와 광주리처럼 생긴 선상지인 ‘강질안’이 나온다. 그 너머로는 그야말로 산이다.

‘불분디기’에는 전설이 전해진다. 소풍가기가 싫었던 한 아이가 있었다. 이유인즉 아버지가 준 용돈이 너무 적었던 것. 아버지에게 더 달라고, 떼를 썼지만, 그의 아버지는 투정부리는 아들의 버릇을 고칠 요량으로 용돈을 더 주지 않았다. 아이는 동생을 데리고 학교에 가다말고 아버지 버릇을 고칠 요량으로 그 용돈을 동생에게 줘버리고는 집으로 돌아가서 아버지에게 자신의 결연함을 보였더랬다.

하지만 아이의 아버지는 아랑곳없이 아이를 학교로 돌려보내는 대신 일을 시켰다. 아이는 실컷 일을 하다 해질 무렵엔 도무지 제 성질을 참지 못하고, 땅벌이 우글대는 벌집에 돌을 던졌다. 그 아이보다 더 화난 벌들이 일제히 그 아이를 공격했고, 그 아이의 동생이 집에 돌아오자 집안에는 화장실 냄새가 진동했다고 한다. 벌 쏘인데는 암모니아수를 바르는 법이니까. 그 주인공이 내 형이다.

4.

동네의 초입에는 군덕질이 있고 그 아랫마을을 우리는 ‘아랫담’이라고 불렀다. 군덕질은 급경사다. 이 경사는 상상을 초월한다. 중학교 친구 영구가 자신의 여자친구를 보여주겠다고 우리 집엘 데려 온 적이 있다. 보조석에 타고 있던 이제 제수씨가 되어버린 그 아가씨는 차가 군덕질로 접어들자 겁에 질려 연신 오빠를 외쳤다고 한다. 차가 뒤로 벌렁 넘어질 것 같았다나 어쨌다나.

언젠가 우리 형은 이 언덕을 브레이크 터진 자전거를 타고 쏜살같이, 아니 쏜살보다 더 빨리 내려간 일이 있었다. 내가 밤을 주우러 밤 밭에 간 사이 밤이 줍기 싫은 형은 우리 동네에서 유일하게 자전거가 있었던 정엽이네 집에서 자전거를 훔쳐냈다. 그러니까 이 미친 인간이 브레이크 터진 자전거를 타고 미친 속도로 어디든 달아나려 했던 것이다. 급경사의 군덕질의 제일 아래는 다시 급커브로 되어 있다. 형은 커브를 틀지 못했고 자전거는 그 속도로 천국까지 단숨에 날아갈 작정이었으나, 자전거의 꿈은 중력에 의해 좌초되고 말았다. 그 커브의 아래에는 일곱 배미의 논이 있었는데, 형은 세 번째 배미에서, 자전거는 두 번째 배미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신발은 네 번째 배미에서 발견되었는데, 왜 신발이 더 멀리 날아갔는지에 대해서 반상회에서 심각하게 논의했다고 하나 뾰족한 답을 찾지는 못했다고 한다.

5.

동네의 오른쪽 끝에는 새의 목처럼 생겼다고 해서 목의 방언인 멱이 붙어 ‘새멱’, 사실 이보다는 더 촌스러운데 ‘새미기’다. 우리 동네 사람들의 논이 여기에 모두 있다. 새미기로 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왜냐하면 길은 시작되면 끝나기 마련이니까. 그러니까 길은 우리 동네에서 시작해서 아랫담으로 이어졌다. 당연히 우리 동네에서 시작되는 길로 가면 더 빨리 새미기에 갈 수 있었고, 아랫담에서 가려면 아랫담까지 가서 다시 돌아올라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배로 걸렸다.

이렇게 지루한 길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언제가 아랫담 삼도 아재가 새미기로 가는 길을 막은 사건이 있기 때문이다. 길의 한 부분이 당신의 땅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수 십 년도 넘게 사람들이 다니던 길을 갑자기 틀어막은 이유는 그 땅이 장군이 날 명당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재가 죽은 후 길 위에 묘자리를 쓸 요량이었다.

 

▲ 공강일서울대 강사·국문학
▲ 공강일서울대 강사·국문학

아버지와 동네 사람들은 우르르 몰려가 삼도 아재에게 따졌지만, 아재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하긴 우르르라고 해봐야 성진이네, 정엽이네, 우리집이 다였으니…. 그 일로 수 년을 싸웠지만 길은 열리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은 불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아버지가 땅을 치며 우는 것을 처음 보았다. 이기심에서 뻗어나온 불합리함 앞에서 아버지는 정말이지 땅을 치며 우셨다. 그 불합리를 도무지 감당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삼도 아재는 돌아가셨지만 소원대로 그 명당에 묻히지는 못했다. 마을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운 곳에는 묘를 쓸 수 없게 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작은 동네라 오순도순 살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크고 작은 일이 언제든 일어난다. 사람들이 사는 곳이란 다 그렇고 그런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