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 고종은 자신이 먼저 서양식으로 머리를 깎고, 낡은 관습을 없앤다는 이유로 백성에게 머리를 짧게 깎도록 단발령을 내렸다. 유교문화에 푹 빠져있던 당시로서는 충격적 조치였다.

신체는 부모로부터 물러받아 몸을 단정하게 하는 것이 부모에 대한 효도라고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비록 왕의 명령이라 할지라도 백성의 저항은 만만찮았다.

히피 문화가 유입된 1970년대의 일이다. 젊은이 사이에 유행한 장발머리는 경찰의 단속 대상이었다. 긴 머리가 우리의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에서다. 여성들이 치마를 짧게 입어도 경범죄로 처벌을 받던 시절이다. 국민의 자율성보다는 전통적 관습이나 사회의 규범적 룰이 일상의 문화를 주도했던 때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전통적 관습은 단시일 내에 깨지기가 좀체 쉽지가 않다.

중고교의 두발자유화는 1982년 교복 자율화와 동시에 시작됐다. 까까머리 학생이 머리를 기른다는 것 자체가 학생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누구보다도 학생들이 대대적으로 환영했다. 사실 그 당시의 두발자유화는 종전보다 좀 더 길게 기르는 완화 정도였지만 학생들의 반향은 완전 좋았다. 물론 염색과 파마는 애초부터 없었던 내용이다. 서울시교육청이 내년부터 두발 완전 자유화를 중고교에게 권고키로 했다. 염색과 파마 등도 허용을 검토한다고 한다. 두발 완전자유화를 염두에 둔 조치로 벌써부터 찬반 논쟁이 뜨겁다. 두발자유화가 이젠 대세란 측면에서 대체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우세한 듯하다. 하나 학생들의 학교생활지도가 사실상 힘들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는 여전히 숙제다.

특히 염색 등으로 빈부격차와 학생 간 위화감 조성 문제에 대해 교육적 대응이 주목된다. 학생의 기본권 존중에서 두발자유화는 출발하였지만 교육 중인 학생이라는 점에서 불가피한 제한은 있어야 한다. 법에도 18세 미만 청소년의 보호를 위해 기본권 제한을 인정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고교생의 자율권 인정을 어느 선까지 보느냐는 교육당국의 지혜로운 판단의 문제다. 두발 완전자유화는 교육당국 손에 달렸다.

/우정구(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