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를 배울 만한 시간’

심재휘 지음·문학동네 펴냄
시집·8천원

심재휘(55) 시인이 4년 만에 새 시집 ‘용서를 배울 만한 시간’(문학동네)을 출간했다.

저자는 지난 1997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해 ‘적당히 쓸쓸하게 바람 부는’ ‘그늘’‘중국인 안마사’ 등의 시집을 출간했으며 제8회 현대시 동인상을 수상한 바 있다. 저자는 현재 대진대 문예창작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번 시집에는 ‘기적’‘비와 나의 이야기’‘마음의 지도’ ‘풍경이 되고 싶다’‘먼길’등 3부에 걸쳐 53편의 시들이 실려 있다.

이 시집은 우리에게 익숙한 언어들로 이뤄져 있다. 시인이 보여주는 감정들도 우리에게 생소하지 않은, 우리와 닿아 있는 감정들이다. 특별한 기교 없이 진솔하게 써내려간 시어들은 그래서 읽는 이에게 스미듯 전달된다. 심재휘가 건네는 다정하고 따뜻한 서정의 말들은 오랜 시간 동안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아픔을 달래주는 위로의 말이다.

심재휘의 시에는 특히 자연물이 자주 등장한다. 이를 통해 자연과 일상이 물 흐르듯이 하나로 통합되는 세계를 그리고 있다. 이를테면 ‘내다볼 멀리도 없이 제 몸을 핥는 꽃에게서/ 차례 없이 시든 잎들에게서/ 용서를 배울 만한 시간’(‘백일홍’), ‘오래 묵힌 음표들도 건들면 음악이고 썩어가는 낙과의 마음은 언제나 꽃이다’(‘다정도 병인 양’) 같은 시구들이 그러하다. 시든 잎들에게서 용서를 배우고, 썩어가는 낙과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시인이 마음을 다해 그들을 보기 때문이다. 온몸으로 사물의 내면을 마주할 때, 시는 우리 스스로의 마음을 새로 발견하게 한다.

이번 시집에서 또 하나의 주된 정서는 그리움이다. 시인은 ‘헤어짐이란 서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라고’(‘봉분이 있던 자리’) 말한다. 시인은 떠나고 사라지는 일의 슬픔보다 이별이 남긴 의미를 살핀다.“이별의 몸이 흥건한 땅바닥에서/그가 둥둥 떠 있던 허공의 어떤 행복으로/괜히 뒷걸음질쳐보고 싶은 저물녘에/나는 와 있는 것이다”―‘가랑비 오는 저녁에 닿다’ 부분

시인은 ‘따뜻한 한 그릇의 말’에서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남긴 ‘늦도록 외롭지 않게 살아라’라는 말을 떠올린다. 시인은 그 말에서 동행의 의미를 발견한 듯하다. 그리고 자신이 받은 따뜻한 말 한마디를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한다. 홀로됨을 숙명으로 타고난 게 사람이라지만 끝내 고독하지 않을 길을 담담히 가리킴으로써 자그만 희망을 건네고 있는 것이다.

“다만 오래 걸어가야 하는 것뿐이란다 아들아/먼 길을 가려면 아들아 너도/국수를 잘 먹어야지”― 심재휘 ‘먼 길’ 부분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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