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지역 종가들
전통문화 간소화 추세
새벽제사 저녁으로 옮기고
추석명절 없애기도

▲ 하회마을 풍산 류씨 종가가 음력 9월 9일 중구절 차례상을 차린 뒤 종손이 조상께 술을 올리고 있다. /하회마을보존회 제공

우리나라 유교전통문화를 전승하고 있는 한국정신문화의 본고장 안동을 비롯한 경북북부지역의 명절 제례문화도 변화하고 있다.

한국정신문화의 수도이자 유교문화의 본향(本鄕)을 자처할만큼 유교의 전통문화 유산이 가장 풍부한 고장인 안동.

안동은 의(義)와 예(禮)를 중시하며 학문의 큰 족적을 남긴 역사적 인물도 많다. 하지만, 산업화와 핵가족화로 전통문화 옛 농경사회의 정서와 풍속을 계승해오고 있는 안동지역 종가(宗家)의 전통문화가 간소하게 변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에 있는 의성 김씨 청계(靑溪) 종택은 300여 년간 이어 오던 새벽 제사(祭祀)를 처음 저녁 무렵으로 늦췄다. 이곳 문중은 최근 회의를 통해 “새벽에 올리는 제사가 불편하다”고 의견을 모으고 현대화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한국국학진흥원이 2016년 비공개로 한 조사에 따르면 경북 지역에서 불천위 제사를 지내는 170여 종가 가운데 절반 정도는 이미 현실에 맞게 제례 방식을 바꾸었다고 한다.

이런 흐름 속에 명절 풍경도 빠르게 변화고 있다. 고향을 찾아 추석 차례(茶禮)를 지내거나, 조상 산소에 성묘를 하던 유교문화의 전통이 점차 퇴색돼 미리 성묘를 하거나 간소화하고 가족 여행을 떠나는 가정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제사를 비롯해 보통 설과 추석 명절을 지내는 모습이 각양각색으로 변하고 있는 가운데 안동에는 추석 명절을 아예 없애버린 종가도 있다. 바로 안동시 풍천면 하회마을 풍산 류씨 집성촌에 있는 대종가이다.

이 마을에선 약 300년 이상 추석을 쇠지 않고 있다. 대신 1년에 겨울(설), 봄(한식), 여름(유두절), 가을(중구절) 등 4번의 차사(차례)를 지내왔다. 세월이 지나 설, 유두절, 중구절에 지내던 차사는 지난해부터 설과 중구절 2번의 차사로 간소화됐다.

풍산 류씨 양진당과 충효당 종가는 추석 차례를 팔월 보름이 아니라 음력으로 9월 9일 중구절에 모신다. 추석에는 햇곡식이 여물지 않아 중구절에 차사를 해야 제대로 된 천신제를 올릴 수 있다 여긴 까닭이다. 추석에는 묘소를 찾아가 풀을 베는 것으로 끝이다.

하회마을의 중구절 차사는 의외로 간단하다. 먼저 음식을 차린 뒤 집사가 신주 문을 열고 종손이 분향(焚香) 강신(降神)한 후 제주 이하 참석자 모두 두 번 절(참신)을 한다. 다시 종손이 신주마다 술을 올리고 젓가락 손잡이가 신주로부터 오른편에 가도록 해 시접 위에 가지런히 올린다.

제주 이하 참석자는 ‘조상님 덕분으로 새로운 곡식을 수확하게 됐으니 많이 잡수시라’는 뜻으로 부복해 아홉 수저 잡수실 동안 기다렸다. 이후 집사가 수저를 거두고 제주 이하 참석자 모두 두 번 절(사신제배)하며 조상을 배웅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 차사의 특징은 분향 강신 때 쓰는 모사(茅沙) 그릇에 있다. 일반적으로 모사는 모래를 담고 그 위에 띠(茅)를 꽂았으나, 양진당 차사에서는 유기 대접에 솔잎과 모래를 담고 그 위에 강신 술을 따른다. 특히 술안주인 적(炙)은 모두 날 것으로 올린다.

유한욱 하회마을보존회 이사는 “이것은 혈식군자(血食君子)라 하는데, 군자는 익히지 않은 음식을 올린다는 뜻이 담겨 있다”며 “이는 참석자들은 집으로 돌아갈 때 생선 한 토막씩 가져가는 봉송(奉送)이라는 제사 예절의 하나로 나눔으로써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손병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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