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규열<br>한동대 교수·경북교육발전기획단장
▲ 장규열 한동대 교수·경북교육발전기획단장

남북정상이 다시 만났다. 생각보다 진전된 합의도 내어놓았다. 봄볕 아름다운 조우와 함께 기대를 모았던 가을날 만남과 결실이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 뿐 아니라 미국과의 관계, 그리고 지역 평화를 위한 특별한 과제를 배경으로 만났기에 관심도 높았다. 그 어느 때 보다 기대를 높이 걸었던 것이다. 우리 대통령과 북한의 정상이 포용과 화합의 정신을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시작으로 겨레가 바라는 평화의 물결이 한반도에 밀물처럼 닥치기를 바라는 것이다. 적잖은 변화가 이 땅에 기대되는 가운데 우리들 보통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한 때 통일은 ‘우리의 소원’이었으며 대한민국에게 ‘통일은 대박’이었다. 정치권이 이에 대하여 어떤 감상을 가졌는가를 따지기 전에 우리 자신은 통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살펴보았으면 싶다. 남과 북은 하나인가. 아니면 그냥 둘이어도 되는가. 이산가족 상봉이든 정상회담이든 우리는 만날 때마다 궁금하였다. 70년 분단의 세월을 극복해야 하는지 아니면 그대로 나뉜 채로 살아도 되는지. 어째서 통일이 소원이었는지 무슨 까닭에 통일이 대박일 수 있었는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와 거의 같은 시기에 분단되었던 독일은 벌써 오래 전에 분단을 극복하였다. 길고 지난한 협상과 토론의 과정을 거쳐 통일을 맞이한 독일 국민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통일은 결론적으로 독일인들에게 무엇을 가져다 주었을까. 히틀러의 아픈 기억을 2차대전의 상처로 간직한 채로, 어찌 보면 우리보다 더욱 극심한 이념의 소용돌이를 겪었던 서독과 동독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지도자들과 국민들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만남들을 시도하였고 끝내 다시 합치는 결과를 만들어 내었다. 물론 주변 정세가 도운 바가 없지 않지만 독일 통일의 결정적 배경은 누가 뭐라 해도 그 모든 과정을 통해 ‘민족적 동질성’을 한 시도 잊지 않은 결과가 아니었을까.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우리는 본래 하나였다’는 생각으로 돌아가고 돌아간 끝에 이룬 결실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어떠한가. 그 어떤 결정도 감상으로만 매듭지을 수는 없다. 구호에 매달리는 협상은 위험하다. 치밀한 이성과 정확한 예측, 그리고 정교한 분석을 따라 모든 과정을 따라가야 한다. 많은 이들의 생각을 참고해야 하며 너른 이념의 지평도 짚어 보아야 한다. 어떻게 하는 것이 역사 앞에 선 한반도와 이 민족에게 선한 결실을 안겨 줄 것인지 현명하게 판단하여야 한다. 우리가 지금 걷고 있는 길이 그 어떤 정파의 정략에 휘둘리지 않도록 더 많은 사람들의 합의를 이끌어 내어야 한다.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도 폭넓게 참여하는 너른 ‘생각의 광장’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 생각 한 가운데에는 ‘우리는 하나’였음을 다지고 확인하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듣자 하니, 남과 북은 이미 여러 면에서 다르다. 같은 우리말을 다르게 표현하는가 하면, 살아가는 모습도 많이 달라졌으며, 생각하는 습관도 꽤나 멀어졌을 터이다. 경제도 문화도 정치도 사회도 그 어느 곳에 쉽게 서로 동화될 가능성이 남아 있을까. 가능성의 지평은 결국 저 ‘우리는 하나’였음을 확인하는 곳에 존재하지 않을까. 모든 어려움을 지나 하나가 되는 날, 우리는 역사 앞에 이렇게 고백해야 하지 않을까. ‘많은 언덕을 넘어왔지만, 우리는 처음부터 하나였음을 끊임없이 확인하면서 걸어 왔노라고.’ 대통령이 북으로 가는 걸음을 떼면서 ‘마음이 무겁다’고 한 까닭이 바로 또 그런 마음 탓이 아니었을까.

오늘부터 이 땅에 평화가 깃들고, 오고 가는 일이 잦아지며, 크고 작게 나누는 일이 풍성하여 질 때, 이 모든 난관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물러가지 않을까. 대통령이 수고하였다. 국민도 함께 애를 태웠다. 이제는 함께 생각을 모을 때가 아닌가.

전쟁보다 평화가 낫지 않은가.

분단보다 통일이 좋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