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룡 선생 만주 이동시
동행한 66명 명단 기록
본문엔 직접 쓴 취지서도

▲ 석주 이상룡 선생이 망명할 때 결성한 것으로 보이는 가족단 명첩.  /경북기록문화연구원 제공
▲ 석주 이상룡 선생이 망명할 때 결성한 것으로 보이는 가족단 명첩. /경북기록문화연구원 제공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이 가족을 이끌고 만주로 망명할 때 결성한 것으로 보이는 ‘가족단명첩’(家族團名帖)이 발견돼 학계에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16일 안동시와 경북기록문화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5월부터 벌인 ‘안동댐 수몰마을 생활사 복원을 위한 아카이브 사업’ 과정에서 이를 발견했다. 가족단명첩의 존재는 석주 선생의 유고(遺稿)나 아들인 동구 이준형 선생의 문집에서 언급된 적이 있지만, 그 실체가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가족단 명첩’은 안동댐 준공으로 마을이 물에 잠긴 안동 도곡동 출신 고성 이씨 이종기(91)씨가 보관하고 있었다.

일부 내용만 공개한 명첩 표지에는 ‘무오(戊午 1918년) 11월 20일과 1910년 경술(庚戌) 5월 시작’이라고 쓰여 있다.

첫 장에는 당시 석주 선생 별칭인 이상희를 단장으로 이상동, 이봉희 등과 탑동 종손, 평지파 종손 등 집안대표 66명의 명단이 적혀 있다. 본문에는 석주 선생이 직접 쓴 가족단 취지서와 이준형 선생 글도 실려 있다.

취지서에는 석주 선생이 만주로 떠나며 종손 부재 때 가족 운영을 당부하는 말, 경술국치로 나라 잃은 데 따른 가문과 문중 사람 각오, 삶을 당부하는 말이 적혀 있다.

석주 선생은 가족단을 결성하고 이듬해인 1911년 일가를 이끌고 만주로 망명했다. 이준형을 비롯해 명첩에 이름을 올린 사람 상당수가 만주로 건너갔다. 안동에 남은 사람들은 독립운동에 참여하거나 지원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처분했던 임청각을 되찾을 당시에도 가족단이 중심이 됐다.

가족단은 아들 이준형 선생과 손부 허은 여사 일가가 귀국한 뒤 도곡동에 들어와 살다가 1939년에 가족단을 해체했다.

경북기록문화연구원 관계자는 “가족단 명첩 내용 일부만 공개했으나 안동지역 독립운동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며 “구체적인 내용을 알려면 더 연구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손병현기자why@kbmaeil.com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