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이었나. 비가 오는 저녁, 강동 경희대 병원으로 향했다. 어딘가 갔다오느라 서울역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었고 먼 길이고 퇴근 시간이어서 지하철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경희대 병원은 지하철 5호선 상일동 방면 끄트머리에 있었다. 서울의 지하철은 9호선까지 있는데, 모르는 사이에 더 생겼는지도 모른다.

병원이 있는 고덕역이라는 곳에 가려면 서울역에서 4호선 타고 동대문역사문화박물관 역으로 가서, 5호선 갈아타야 했다. 하지만 늘 예기찮은 일이 생기는 법이다. 막상 지하철을 갈아 타려는데, 아뿔싸, 공사 때문에 환승 통로 가 폐쇄되었다고 했다. 어떻게 하나. 만일을 위해 병문안을 함께 하기로 한 일행들과 약속시간을 삼십 분 늦춰 놓았지만 그래도 시간이 빠듯했고 이제 본격적으로 늦을 참이었다.

당황스러운 마음으로 다시 한 정거장 옆에 있는 동대문역으로 갔다. 공고판에 동대문역 운운한 것 같았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동대문 역에 5호선 환승은 없었다. 착각이었던 것이다. 울며 겨자먹기로 지하철 1호선으로 갈아타고 종로 3가역으로 가서 5호선쪽으로 가는데, 서울 환승역 중에 이렇게 먼 곳도 없을 것 같았다. 한없이 먼 통로를 걸어 겨우 5호선쪽 내려갔다고 생각했는데 , 맙소사, 이번에는 3호선이란다. 끙끙대며 다시 올라와 5호선 플랫폼으로 오자마자 전철이 들어온다. 타자.

사실, 내가 가려는 고덕 역은 마천 방면이 아니라 상일동 방면에 있다. 타고 나서 전광판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마천행이다. 지하철이 강동역에서 갈라지기 전에 내려서 다음번 것을 타야 한다.

초조한 마음으로 고덕역에 내려 병원 위치를 물어 물어 마침내 도착하고 보니 벌써 삼십 분 이상 지각이다. 두 작가는 먼저 812호 병실에 올라가 있을 테다. 지금 말기암으로 투병하고 있는 최 작가가 우리를 맞이해 주기로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중환자 병동으로 올라가니, 두 사람은 이미 면회를 마치고 바깥에 나와 있다. 최 작가가 몹시 힘들어 해 아마 잠들었을 거라고, 들어가도 잠든 모습만 봐야 할 것 같단다. 그렇군. 안타까운 마음으로 다시 셋이 병실 안으로 들어가 보는데, 최 작가는 뜻밖에 침상 옆 의자에 앉아 있다. 눈 떠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다가가 반가운 얼굴로 그의 야윈 손을 잡았다. 최 작가의 손은 체온이 옅었고 얼굴은 지난 번 3주쯤 전보다도 많이 야위어 있었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최 작가는 ‘작가의 말’을 써야 하는데 집중이 되지 않아 생각해 놓은 것도 적을 수 없다고 했다. 통증이 뭣보다 무섭다고, 그냥 안 아프기만 하면 좋겠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작가의 말’이란 이효석 문학상 수상 작품집에 들어갈 말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의 단편소설 ‘고독 공포를 줄여주는 전기의자’가 우수작으로 최근에 선정된 것이다.

그의 손을 다시 잡고 작별하고, 바깥으로 나와 문안 온 사람끼리 맥빠진 식사를 하고, 도로 먼 길을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까지 왔다.

‘고독공포를 줄여주는 전기의자’는 죽음에 관한 사색을 담고 있는 작품이었다. 나는 속으로 이 소설은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삶을 걸고 그는 죽음 앞에서 죽음에 관한 탐구를 이룬 것이었다. 나는 그의 이 소설이 이후로도 오래 남아 사람들의 마음을 깊이 움직여 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서울역 바깥으로 나오자 비는 더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