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기술의 발전은 바람과도 같다. 우리는 그 바람에 떠밀리고 있다. 바람을 막을 수는 없다. 과학기술은 시간과도 같아서 우리는 자꾸 떠밀리기만 한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인간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사유다.
▲ 과학기술의 발전은 바람과도 같다. 우리는 그 바람에 떠밀리고 있다. 바람을 막을 수는 없다. 과학기술은 시간과도 같아서 우리는 자꾸 떠밀리기만 한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인간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사유다.

△과학발전이 인류 행복 증진

과학이 인류의 행복을 증진시켰다고 볼 수 있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과학기술은 그 분야 특성상 인류의 행복 증진에 기여한다. 인류의 행복이 증가해왔음을 주장하는 유엔의 2012 행복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지구에서의 삶은 평균적으로 볼 때 지난 500년 동안 폭력적이고 비참한 정도가 훨씬 감소했고 수명은 훨씬 늘어났다. 자살률의 감소와 평균수명의 증가가 이런 사실에 대한 증거이다.”

이 보고서에서 행복 증가의 요인으로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은 인간의 수명연장이며, 이것은 과학기술, 구체적으로 의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예컨대 과거 로마인의 평균 수명은 40세에 미치지 않았다. 하지만 현대인의 평균수명은 70∼80세로 이는 약 190% 증가한 수치이다. 이러한 인류의 수명이 극적으로 연장된 데에는, 과학기술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동시에 연장된 삶 속에서 과학기술은 과거 인류가 겪었던 수많은 질병으로부터 보호해주었다. 실제로 2008년 전세계 10대 사망 원인에 해당하던 결핵은 2011년 목록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비슷한 예로, 세계보건기구의 10대 사망 원인에 포함되어 있는 HIV/AIDS의 치료 역시 의약품의 개발로 급속도로 개선되어 왔다. 또한 이제는 어떤 암들은 예전처럼 사형선고가 아니라 치료 가능한 질병이 되었으며 실제로 지난 40년 동안 비호치킨성 림프종, 유방암, 대장암의 생존 기간은 극적으로 늘어났다. 긴 수명이 행복의 절대적인 요소이며, 행복에 직결되는 유일한 요소라고 믿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극적인 수명연장과 질병으로부터의 해방은 필연적으로 인류의 행복 증진에 일부분 기여해 온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둘째, 발전된 과학 기술은 열악한 작업환경으로부터 인류를 구제해 주었다. 폐품수거인, 지붕수리공, 원자력 발전소의 근무원과 같은 직업군들은 매년 수백명의 근로자의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위험한 직업군이다. 다른 예로, 컨베이어 벨트위에서 하루에 8시간, 혹은 그 이상씩 앉아서 똑같은 단순 업무를 처리해야하는 직업으로부터는 직업적 보람을 얻기가 힘들다. 이렇듯 더럽고(dirty), 위험하고 (dangerous), 지루한(dull) 직업을 일컬어 3D 산업이라고 말한다. 3D 직업이 열악한 노동환경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3D 산업으로부터 고통 받아야 했던 이유는, 이 작업을 대체할 만한 새로운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다.

로봇공학은 이러한 일에서 인간을 해방시켜 더욱 의미 있으며, 고부가가치의 일에 참여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런 과학기술이 인류의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고 하지만 그것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 이제 과학기술을 개발해낼, 훨씬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50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현재에 등장한 수많은 직업군을 생각해내는 일은 어렵지 않다. 실제로 산업혁명 이후의 인류의 직업은 단 한 번도 감소한 적이 없다고 한다.

이런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과학기술이 많은 의심과 회의를 마주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본능적으로 새롭게 나온 대상들을 두려워하는 경향 때문일 것이다. 처음 사진기가 나왔을 때 사람들은 사진을 찍으면 영혼을 빼앗긴다는 미신 때문에 사회에 받아들여지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고, 증기기관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과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러다이트(Luddite) 운동과 같은 반달리즘적 행동을 보이기도 하였다.

시험관 아기가 거론되었을 때 수많은 사회적 의심들과 윤리적 비난들을 생각해보라. 그러나 그러한 이유들 때문에 시험관 아기 기술이 불법화 되었더라면, 아이를 갖고 싶어했지만 신체적인 이유로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많은 부부들은 시험관 아기 기술을 통해 아이를 얻은 지금보다 훨씬 더 불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진기나 증기기관 역시 시험관 아기처럼 궁극적으로는 인류의 행복에 기여했다.

우리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적 차원에서 벗어나 과학을 보다 이성적이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과학으로 인해 인류의 행복이 증진되었다는 것을 직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과학이 이룩하고 있는 혁신을 이성적인 차원에서 바라보며, 그 과학기술을 무턱대고 비방하기보다는 이것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과학발전은 인류의 행복에 무 영향

이에 반해 과학기술을 통해 인류는 결코 행복에 도달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두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첫째, 과학기술은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한 채 늘 한 걸음 뒤처져 따라온다. 우리는 과학 기술이 고도로 발전된 미래에는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 번 착각한다. 인류는 그런 미래가 오기 전까지 스스로에게 불행을 ‘잠시’(결국 다시 잠시가 아니게 될 운명이지만) 참자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막상 그렇게 열망해왔던 과학기술이 현실이 되었을 때에, 인간의 욕망은 우리를 불만족한 상태로 이끌며, 새로운 과학기술을 요구한다. 물론 우리는 과거의 조상들에 비해 훨씬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한병철은 현대사회를 ‘피로사회’로 규정하며 현대인들은 만성적인 우울증과 피로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한다. 그가 열거하는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경계성성격장애, 소진증후군과 같은 병리적 현상들이 현대인들의 피로한 삶을 대변해 준다. 우리는 이미 발전한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자꾸만 앞을 내다보려고만 한다. 오로지 눈앞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허구의 (결코 부여잡을 수 없는) 행복의 기준점만 보며 달려가고 있을 뿐이다.

▲ 공강일<BR>서울대 강사·국문학
▲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

둘째, 과학기술 발전 속도만큼이나 행복의 기준 역시 복잡해진다. 과거 먼 길을 걸어 다녀야만 했던 우리 조상들은 뭔가를 타고 다닐 수 있으면 행복해지리라고 믿었다. 마차가 발명되자 당시 사람들은 자신들이 타고 다닐 수단이 좀 더 빠르다면 더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이제 1가구에 평균적으로 1. 2개의 자동차를 소유하는 21세기의 사람들은 과거의 조상들의 생각과는 달리 또 무엇인가를 갈구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마차를 타던 사람들도, 자동차를 타는 사람들도 행복하지 않고, 장담컨대 미래에 50가지의 기능을 탑재한 자동차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미래에 어떤 특정한 기술이 나온다면, 아니면 어떤 경우에는 그냥 막연히 시간이 흐른다면, 행복해지리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 믿었던 미래가 우리 앞에 도래하는 순간, 미래는 현재로 바뀌게 되고 동시에 새로운 미래가 나타난다. 그러면서 행복은 점점 미뤄져 간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는 만큼 행복의 기준도 그만큼 복잡해져서 궁극적으로 인류는 행복감을 채우기가 더 어렵게 된다. 빠르게 발전한 과학기술은 발전과 동시에 인간에게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수많은 것들을 제시했다. 행복이라는 개념은 절대이지가 않아서 특정한 기술적 기준에 도달했을 때 쟁취해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설정하는 이 허구의 행복 기준들은 인류의 허영심과 욕심에 기반을 두고 있기에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는 인류는 행복을 위해 더 많은 것들을 바라게 된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이러한 기준은 나날이 복잡해 질 것이다. 그러기에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류의 행복 증진에 기여하지 못할 뿐더러 오히려 행복의 기준을 필요 이상으로 복잡하게 제시함으로써, 인류가 행복이라는 상태에 더 도달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