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명득 편집부국장
▲ 김명득 편집부국장

2년 전 P사의 해외 현지법인 취재차 그리스와 터키를 다녀왔다.

당시 유럽안정화기금(ESM)의 구제금융체제 하에 있던 그리스를 처음 본 느낌은 피폐한 경제난 속에서도 그들은 아직 정신 차리지 못한, 마치 영화속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무사태평의 그 모습이었다. 그들은 세계 최고의 관광자원을 갖고 있다는 허황된 자부심과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이상한 신념을 갖고 있는듯 했다. 활기를 잃은 도시의 건물과 담벼락 곳곳에는 온통 ‘그래피티(graffiti)’가 난무했고, 한 때 번성했던 시절에 타고 다니던 요트들이 심각한 경제난을 겪으면서 고물선이 된 채 바다가 아닌 도로변과 산기슭에 무질서하게 널려 있었다. 그리스 시내를 둘러보며 현지 가이드가 한 말이 문득 생각난다. 그리스의 직장인들은 대부분 오전 9~10시에 출근하고 점심시간인 낮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 식사나 휴식을 취하고 오후 4~5시면 퇴근한다는 것. 한국에서 이런 직장이라면 그야말로 ‘신의 직장’이다. IMF 외환위기 때 한국인들과 비교하면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국가가 망하면 모든 게 끝나는데, 어쩌면 저렇게 느긋할 수 있을까.

그런 그리스가 지난 2015년 구제금융에 들어간 지 3년만에 벗어났다고 한다.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을 집행하던 ESM 측이 추가 프로그램의 종료를 선언한 것이다. 구제금융에서 벗어났다고는 하나 그리스의 상처는 너무 컸다. 경제 규모가 2015년에 비해 25%나 축소됐고, 국민의 소득과 연금은 평균 3분 1 가량 줄었다. 젊은층 40%는 여전히 실업 상태다. 일자리를 찾아 청년층이 해외로 탈출하는 바람에 전체 인구 중 20~39세의 비중이 8년 사이 29%에서 24%로 떨어졌다. 관광산업을 제외하고는 변변한 제조업조차 없었던 그리스는 관광자원 하나만 믿고 너무 현실에 안주했던 것이다.

얼마 전 신문의 지구촌 포토 란에 생닭 한 마리를 사기 위해 필요한 지폐 뭉치를 가득 쌓아놓은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바로 이념적 사회주의를 지향하던 베네수엘라의 현주소를 보여준 안타까운 장면이다. 지금 베네수엘라에서는 희망을 찾기 힘들다. 기존 볼리바르화를 10만 대 1로 액면 절하했으나 연말까지 인플레이션율이 100만%에 달할 것이라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전망이 나올 정도로 상황은 비관적이다. 생활고를 피해 나라를 탈출한 베네수엘라의 ‘보트피플 (boat people)’은 주변국 곳곳에서도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그 와중에도 좌파 정권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최저임금을 60배나 올리는 등 포퓰리즘 횡포를 부리고 있다. 세계 최대 석유 매장국을 자랑하던 베네수엘라는 고유가에 취해 이념 정치를 펼치다 미래를 잃어가고 있다. 그 대가는 참담한 국민의 고통으로 고스란히 돌아오고 있다.

요즘 한국의 경제상황을 보면 마치 이들 국가와 흡사하게 닮아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탈원전 등에 따른 부작용과 고통이 사회 곳곳에서 아우성인 데도 정부는 귀를 닫고 있다. 참다 못한 영세 자영업자들은 길거리로 뛰쳐 나왔고, 취직 못한 청년 실업자들은 울분을 토하고 있다. 급기야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들은 하나 둘씩 해외로 떠나고 있다. 정부가 일자리 예산 54조원을 쏟아부었지만 고용시장은 ‘참사’, ‘재앙’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참담하다. 54조원은 실업자 100만 명에게 5천400만원씩 나눠줄 수 있는 큰 돈이다. 그 많은 돈이 다 어디로 갔을까. 아마 자기 돈이라면 이렇게 펑펑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스와 베네수엘라를 우리나라와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경제 현실을 무시한 현 정부의 ‘실험적 정치’는 이제 위험수위에 도달했다. 두 나라가 던져준 교훈을 반면교사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