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준섭변호사
▲ 박준섭변호사

문재인 2기 정부가 시작됐다. 문 대통령은 “우리가 함께 이뤄내야 할 시대적 소명은 분명하다. 지속적인 적폐청산으로 불의의 시대를 밀어내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적폐청산을 해왔는데 이것을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소식을 접하면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과거청산 방식이 생각났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백인우월주의는 17세기 중엽 백인 이주와 더불어 시작됐다. 네덜란드계 백인을 기반으로 하는 국민당 정부가 1948년 수립 후 인종차별·인종격리라는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를 낳았다. 이 무자비한 차별정책은 1994년 처음으로 민주선거가 치러지고 만델라가 대통령에 취임할 때까지 46년간 계속됐다.

아파르트헤이트는 인구등록법에 따라 백인, 흑백 혼혈인, 인도인, 흑인으로 인종을 나누고, 다른 인종간의 결혼을 금했다. 또 인종별로 거주지를 규정해 강제 이주시켰으며, 유색 인종이 중앙정치에 참여하는 것도 법으로 제한했다. 반투 교육법을 두어 흑인 아동들에게는 고등 교육을 시키지 않고 급식도 제한했다. 희생자의 목에 타이어를 끼우고 석유를 가득 부은 뒤 불을 지르기도 했고, 사람을 죽인 뒤 증거 인멸을 위해 시체를 태우면서 옆에서 바비큐를 즐기기도 했다. 고환을 꺼내 골프공 크기가 될 때까지 힘껏 쥐어짠 뒤 강하게 내리치기도 했다.

넬슨 만델라 대통령은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에서 저지른 과거사를 처리하기 위해 투투 대주교를 ‘진실화해위원회’ 의장으로 임명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진실과 화해 위원회 설립은 국제적으로 선구적인 사건이었다. 그 이유는 어떤 나라도 과거에 저질러진 잔학 행위의 진실을 드러내면서 이전의 억압자들과 화해하고 포용하는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길을 추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전의 과거청산은 오로지 처벌과 응보를 통한 정의의 회복만 있었다. 2차 세계대전 후 뉘른베르크의 과거청산이 그랬고, 식민지를 경험한 다른 나라들이 그랬다. 그러나 진실과 화해 위원회의 핵심은 “잘못에 대해 진실을 말하라. 그러면 모든 것을 용서하겠다. 그렇지 않으면 끝까지 진실을 밝혀서 처벌하겠다”는 것이었고, 이 원칙에 따라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과거는 청산됐다.

투투가 남아공의 화해와 진실위원회의 방법으로 정의를 세우려고 했던 것은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청산하는 ‘주체의 불완전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도 친일에 대한 역사청산의 문제, 근대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대기업과 그에 따른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빈부의 격차, 권력남용, 남성우월주의, 권위주의 등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고 우리는 여전히 싸움터의 한복판에 있다.

투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조화, 친절함, 공동체는 모두 가치있는 선이지만, 사회적 조화는 우리에게 숨뭄 보눔(summum bonum), 즉 최고선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추구해 온 이 선을 파괴하거나 훼손하는 모든 것을 역병처럼 피해야 한다. 분노, 적개심, 복수심, 심지어 치열한 경쟁을 통한 성공은 이 선을 좀먹는다. 용서는 그저 이타심만 발휘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에게 가장 큰 유익이 된다. 상대방을 비인간화하려는 것은 틀림없이 나도 비인간화한다. 용서는 사람들에게 회복할 힘을 주어 그들을 비인간화하려는 온갖 시도를 이기고 여전히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한다. 서로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사회, 그 사회에 참된 미래가 있다. 용서없이 미래는 없다.” 현재에 당면한 문제점에 대해 계속 개혁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 하는 적폐청산이라는 과거청산의 방식에 선뜻 동의가 되지 않고, 과거를 다루는 방식이 철학적인 관점에서 아쉬운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