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땀방울이 희망의 꽃으로 새마을운동가 구술 채록
⑤ 조순란 전 구미시새마을부녀회장 (下)

▲ 금오공대 장학금 마련을 위해 개최했던 구미시새마을 바자회 모습.

△경제살리기에 두팔을 걷다

나라가 어려울 때 국민이 나서야 된다고 생각해요. 역사를 봐도 항상 그렇게 해왔구요. 나라가 힘들면 결국 국민이 힘드니까 스스로 해결해야죠.

경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IMF 당시 금모으기 운동을 해서 전국에서 구미새마을회가 1등도 했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았어요. 10원 동전모으기, 재활용품 수집 등 작은 일이었지만 나라살림에 도움이 되는 일을 많이 했어요.

사람들은 금모으기 운동 밖에 기억하지 못하지만. 동전모으기 운동은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했어요. 학생들은 돈이 없으니까 10원 동전이라도 모아서 나라살림에 보탬이 되라고 시작했죠. 학생들도 적극 동참했었어요. 당시 모금 금액이 얼마인지는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학생들이 모은 10원 동전을 도청에 전달했어요. 매년 해오던 사업이긴 하지만 재활용품수집경연대회도 나라살림을 위한 모금이었죠.

당시 동네 주민들이 적극 도와주었어요. 너나할 것 없이 모두가 동참해 고철 등을 모아 기금을 마련했어요. 지금 생각하도 우리 국민만큼 애국심이 강한 나라는 없을 거에요. 나라가 어려울 때 마다 나라를 지킨 국민들이니까요. 새마을운동도 애국심에서 비롯된 거에요.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그런 봉사를 할 수가 없거든요.

北 돕는 것에 정치잣대 안돼
어려운 사람 외면말고 도우면
마음·진심이 반드시 통해

△어려운 가정환경의 학생들을 돕다

난 공부를 안해서 좋은 대학에 못 간거지, 환경이 어려워서 공부를 목 했던 것은 아니거든요. 또 아버지가 지역에서 존경받는 교육자이셔서 그런지 어려운 환경으로 학업을 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요.

그러다 우연히 전자공고 학생 2명이 가정이 어려워 학업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학비를 졸업할 때까지 내가 내주었어요. 점심시간에 불러내서 밥도 해먹이고, 교복도 해주고 했어요.

그 학생들이 졸업을 한지가 벌써 30년 가까이 되는 것 같아요. 잘 살고 있을거라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작년에 한번 찾아왔더라구요. 얼마나 반갑던지. 지금 김천우체국에서 근무하고 있다면서 꿀 한병하고 유과 한상자를 들고 왔어요.

그동안 먹고 살기 바빠서 찾아 뵙지 못했다면서. 정말 그때 감사했다고 말하는데 눈물이 다 나더라구요.

그래도 날 이렇게 기억해주고 번듯하게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또 한번은 남편 제자 중에 김천여고에 들어갔는데 교복 살 형편이 안된다는 거에요. 그래서 김천 동신양잠점에 가서 교복을 하나 맞춰 주었어요.

그 학생 부모님이 항아리 장사를 하시는데 고맙다면서 멋진 항아리를 주시기도 했어요. 아직도 그 항아리가 집에 있어요. 항아리를 볼때마다 생각이 나요.

돈이 없어 공부를 할 수 없다는 것은 진짜 말이 안되는 것 같아요. 자기가 하기 싫어서 안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하고 싶은데도 못하는 것은 안되는 거에요. 그런 일이 없도록 이 사회가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린 학생들에게 어른들이 좀 더 관심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간섭을 하라는 것이 아니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에요. 구미시새마을부녀회가 주관하는 바자회가 있어요.

내가 회장을 맡고 있을 당시에는 그 수익금으로 장학금을 지급했었어요. 지금도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회장을 맡았던 5년동안은 그렇게 했어요. 금오공과대학교 학생들에게 매년 20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했죠. 한 학생에 100만원씩. 2명에게 장학금을 주었어요. 비록 큰 금액은 아닐지라도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은 새마을운동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제발 어린 세대들이 새마을운동을 지붕만 고쳐주는 그런 사업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 정신을 제대로 배웠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요.

▲ 재활용품수집경연대회 모습.
▲ 재활용품수집경연대회 모습.

△남을 위한 마음이 세상을 움직여

1990년인가 정확하게 기억은 안나는데 아마 맞을 거에요. 당시 경기도 파주에 물난리가 나서 많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구미시새마을회가 도움을 주기로 했어요.

간장, 고추장, 수건, 라면 등 생필품을 챙겨 트럭 2대에 싣고 파주로 갔어요. 트럭 2대분을 싣고 현장에 가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하더라구요. 물난리라는 걸 TV로만 봤지, 현장을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가서 생필품을 나눠 주고 마음으로 위로를 해드리고 왔어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잊을 때 쯤 구미에서도 물난리가 났어요. 1991년 8월로 기억하는데 강평동이 완전히 물바다가 됐어요.

뉴스에도 보도가 되고 했는데, 그 뉴스를 봤는지 파주에서 예전에 도와줘서 고맙다며 쌀 100포를 싣고 왔어요. 그걸 함께 수해민들에게 나눠주는데 정말 고맙더라구요.

이래서 서로 돕고 살아야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에 지역과 국가가 있어서는 안되요. 지금은 잘 살아도 언제 어려워 질지도 모르는게 세상살이 잖아요.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절대 외면하면 안되는 거에요.

이 지역에서 40년 넘게 새마을 봉사활동을 하면서 느낀점은 절대 어려운 사람을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거에요. 그건 새마을정신에도 어긋나는 일이에요. 가끔 북한을 돕는 일에 정치적인 해석을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건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을 하는 사람이 정치적인 잣대를 갖고 일을 해서는 안되는 거죠. 정치는 정치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어려운 사람을 진심으로 도우면 되는 거에요.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그 진심을 알거든요. 그런 진심이 세상을 움직이는 거에요. 정치가 세상을 움직이는건 아니에요. 사람들이 이 사실을 좀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 조순란 전 구미시새마을부녀회장이 그동안 받은 상장과 감사패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 조순란 전 구미시새마을부녀회장이 그동안 받은 상장과 감사패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모든 책임은 나에게

가끔 사람들이 물어봐요. 구미시새마을부녀회장 임기가 3년씩 두번인데 6년이 아니라 5년만 한 이유가 뭐냐고. 참 부끄러운 일이라 대답하기가 곤란해요.

그냥 마음에 묻고 살아야지. 다 내 잘못이니까. 사실 5년째 되던해에 내가 스스로 물러났어요. 어떻게보면 불명예스러운 일이죠. 40년 넘게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해 왔는데 그 경력에 큰 오점을 남긴거에요.

당시 바자회에 쓰라고 한 업체가 상품으로 스폰을 해줬었어요. 좋은일을 하는 거니까. 그런데 스폰을 받은 물건이 다른 곳에 쓰여졌어요. 비록 내가 한 일은 아니지만, 내가 회장이고 책임자니까 그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난거죠.

이런 불미스런 일을 지금 이야기하는 것은 당시의 잘잘못을 따지자는 게 절대 아니에요. 변명을 하려는 것도 아니고. 단지 누구나 자신의 직위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에요.

요즘 사람들은 항상 남 탓을 하잖아요. 위에 높으신 분들이 더 그러는 것 같아요. 지도자라면 밑에서 잘못한 일도 스스로 책임을 질줄 알아야해요. 사람을 잘못 쓴것도 지도자의 책임이니까요.

지도자가 밑에 사람이 한 잘못을 회피한다면 그건 지도자가 아니죠. 새마을운동은 지도자 교육이라는 걸 하잖아요. 그건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 때문이에요.

지도자가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어야만 시민들이 믿고 따르는 거니까. 난 새마을운동을 정말로 신바람나게 일했어요. 즐거운 마음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고 자부해요. 그리고 새마을 지도자라서 항상 조심했어요. 내가 하는 언행에 있어 신중하게 했어요. 내가 잘못을 하면 새마을 전체에 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비록 명예스럽지 못하게 회장직을 중간에 그만 두었지만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아요.

다만, 책임을 져야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에요. 그래야 우리같은 국민들이 편하게 살 수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라도 사람들이 새마을운동에 좀 더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해요. 그래야 지도자가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알 수 있으니까.

구미/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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