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휘논설위원
▲ 안재휘논설위원

‘못 되면 조상 탓, 잘되면 제 공(功)’이라는 말이 있다. 살아가면서 뭔가 일이 안 풀릴 때마다 ‘남 탓’만 하는 찌질한 인간들을 숱하게 본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정권을 잡기 위해서 주야장청 시시콜콜 반대하고 헐뜯는 기술을 발휘하던 정치세력의 유치한 속성이 있다. 막상 정권을 잡은 뒤에는 영락없이, 하는 일이 잘되면 공치사에 여념이 없고 잘못되면 전(前) 정권 허물로 뒤집어씌우는 궤변생산에 몰두한다.

급격히 거꾸러지고 있는 경제지표를 둘러싼 정치공방이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다. 문재인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정책’에 대한 야당과 경제계의 거듭된 비판에 청와대와 여당은 분명하게 ‘No!’라고 답했다. 25일 전당대회 영상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현재의 경제정책 기조를 ‘올바른 길’이라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은 이해찬 의원을 새 당 대표로 뽑으면서 ‘정면 돌파’ 기류를 뒷받침했다.

임금 인상이 소비를 촉진하고 그 결과 경제에 선순환을 가져오게 된다는 것이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골간이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글로벌 경쟁체제에서 이는 통하는 이론이 아니라고 비판한다. 한국처럼 수출 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임금이 올라 제품 경쟁력이 떨어지면 그 자리는 다른 나라 제품이 차지하게 돼 국내 일자리가 줄고, 결국 소비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시장의 반응은 이 같은 부정적 견해에 근접하고 있다.

23일 발표된 올해 2분기 가계 동향조사를 보면 소득최하위 20% 가계의 소득은 7.6% 감소했다. 반면 소득 최상위 20% 가계의 소득은 10.3% 늘어났다. 최상위 가계와 차상위 가계의 근로소득은 2분기 중 12.9%와 4.0% 늘어난 반면 최하위 가계와 차하위 가계의 근로소득은 같은 기간 15.9%와 2.7% 감소했다. 2분기만 놓고 보면 이는 2003년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래 가장 큰 폭의 등락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분석은 각도가 다르다. 전당대회 축사에서 문 대통령은 “전체적으로 보면 고용의 양과 질이 개선되었다”면서 “성장률도 지난 정부보다 나아졌고 전반적인 가계소득도 높아졌다”고 적시했다. 이어서 “이것이 혁신성장과 함께 포용적 성장을 위한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가 더욱 다양한 정책수단으로 강화되어야 하는 이유”라고 강변하고 있다.

청와대와 여당은 작금의 ‘고용쇼크’ 또는 ‘불평등 쇼크’의 범인이 최저임금 폭증과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지목을 합리적 추론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정책의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은 당연한데 이를 정치적으로 불순하게 공격한다는 인식인 것이다. 오히려 국고를 마중물로 더 쏟아부어야 할 타이밍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쯤 되면 사실상 막아설 대책이 없다. 제아무리 떠들어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칼자루 쥔 사람들이 지금 마음대로 하고 나중에 책임지겠다고 할 때, 이를 말릴 방도란 있지 않은 게 현실이다.

문재인정부가 추구하고 있는 ‘산타클로스’ 정책이 정말로 기적을 일궈낼 지는 아직 명징하게 알 방법이 없다. 밥솥의 물이 끓고 뜸이 들어 밥이 익자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치를 모르는 바보가 어디 있을까. 다만 그때까지 생존의 변방으로 내몰린 서민들이, 위태로이 부작용을 견뎌가고 있는 중산층이 과연 무사할까 그게 걱정일 따름이다. 아니, 이 나라 경제가 회복불능의 수렁 속으로 아주 굴러 떨어지지나 않았으면 좋겠다.

아무렇거나, 입만 열면 지나간 정권 탓을 쏟아내는 못된 버릇만이라도 제발 끊어줬으면 좋겠다. 산타클로스에게 왜 변명이 필요할 것인가. 승용차 뒤 유리창에 ‘내 탓이오’ 스티커를 붙이면서 ‘탐욕과 교만, 적대감’을 부추기는 인간의 잘못을 ‘지금, 여기, 나’한테서부터 찾아보자는 감동적인 인성회복 운동을 펼치셨던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문득 문득 떠오르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