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창원수필가
▲ 박창원수필가

지난 봄, 어느 면지역에서 인기리에 열리는 특산물축제에 가 보았다. 개회식이 시작됐다. 내빈소개부터 했다. 시장, 국회의원, 시의회의장, 도의원, 시의원, 기관단체장 순서대로 소개를 했다. 소개할 사람이 많다보니 시간이 많이 걸렸다.

국민의례가 있고 난 다음에 축제추진위원장의 개회사가 있었다. 바쁜 시정, 의정활동에도 불구하고 참석한 시장, 국회의원, 시의회의장 등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이어 시장의 축사가 있었다. 시장은 지역 출신 국회의원에 대한 찬사와 함께 도의원, 시의원이 이 지역을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국회의원이 축사를 한 뒤 시의회의장이 단상에 올라왔다. 의장은 이곳 출신 동료 시의원이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고 치켜세웠다. 시장이든 지방의원이든 이렇게 단상에 올라가 마이크를 잡으면 자기네들끼리 품앗이하듯 서로 칭찬해 주기를 한다. 뙤약볕에 앉아 있는 일반인을 배려하지 않는 이러한 식의 지루한 내빈소개와 축사는 빈축을 사게 마련이다.

얼마 뒤 다른 곳의 특산물축제에 간 적이 있다. 앞의 개회식과 비슷한 순서로 진행되었다. 다만 이 행사에서는 시장이 참석을 하지 못하고 구청장이 대신 왔다.

사회자는 “시장님을 대신해 구청장님의 축사가 있겠습니다”라는 말을 했고, 단상에 오른 구청장은 “시장님이 직접 오시어 축사를 하셔야 하는데, 사정이 있어 참석을 못하게 되어 제가 대신 하게 되었습니다”라는 양해를 구한 뒤 축사를 했다. 구청장을 비롯한 몇 사람의 축사가 끝난 뒤 사회자는 느닷없이 “오늘 행사에 참석을 못하신 시장님께서 축전을 보내주셨는데,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하고는 축전을 낭독했다. 시장 대신 구청장이 참석했다 했고, 그에 따라 구청장이 축사를 했음에도 시장의 축전은 또 무엇인가? 참으로 희한한 의전이다.

작년 어느 달인가 시에서 주최하는 어느 행사에 참석한 일이 있다. 내빈소개 순서가 되자 시장이 먼저 소개됐다. 시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시장이 내빈으로 소개된 것이다. 내빈(來賓)이란 무엇인가? ‘어떤 모임에 공식적으로 초대를 받아 참석한 손님’을 말한다. 이 경우 시장은 내빈이 아니다. 주최자이다. 주인을 손님으로 소개한 꼴이 되고 말았다. 이처럼 주최자를 내빈으로 소개하는 곳이 꽤 많다.

이런 문제점을 의식해서인지 요즘 어떤 행사장에서는 ‘내빈’이란 말 대신 ‘내외 귀빈’이란 용어를 쓴다. 내외 귀빈을 소개하겠다며 한 사람씩 소개하고 박수를 치게 한다. 내외 귀빈은 누구를 말하는가? 보통 내빈(來賓)이라 하면 ‘행사에 참석한 외부 손님’을 뜻하지만 ‘내외 귀빈’이라 하면 ‘내부 귀빈’과 ‘외부 귀빈’, 즉 ‘안 손님’과 ‘바깥 손님’을 아우르는 말로 들린다. ‘손님’이란 말 자체가 ‘외부에서 참석한 사람’을 전제로 한다. 주최측 인사는 어떠한 경우에도 손님이 될 수 없으니 ‘내부 귀빈’이나 ‘안 손님’은 말이 안 되는 용어다. 주최측 인사를 굳이 소개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에서 주관하는 행사에 시장이 참석했고, 시장을 소개해야 한다면 “내빈 소개가 있겠습니다”라고 하지 말고 “오늘 행사에 참석하신 주요 인사를 소개하겠습니다”라고 한 다음에 “○○○ 시장님 참석하셨습니다.” 라고 하면 된다.

참석 내빈이 많아 지루함이 예상되는 경우 기념사나 축사 예정자는 소개를 생략하는 재치가 필요하다. 물론 내빈(참석자)소개를 시작하기 전에 양해를 구해야 한다. 그들은 어차피 기념사나 축사를 할 때 소개가 되고, 자신한테 할애된 최소 5분 정도의 시간이 있지 않은가. 내빈소개를 할 때 일어서서 인사를 하고, 기념사나 축사 때 나와 또 연설을 하고, 축사를 하는 다른 인사가 또 이름을 거론해 주고, …. 이러는 사이 행사는 김이 빠지고, 사람들은 지치게 돼 있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내빈소개나 축사 방식은 개선할 필요가 있다. 내빈을 위한 소개나 축사가 아니라 일반 참석자를 배려하는 소개나 축사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