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사는 세상을 일컫는 말이 아니다. 99세를 의미하는 백수(白壽)가 아니고 맨손이란 뜻의 백수(白手)다. 보통 맨손 맨주먹을 이야기할 때 적수공권(赤手空拳)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나 직업이 없는 사람을 두고 우리는 맨손의 백수라 부른다.

나이가 차 정년에 도달하면 누구나 백수의 생활로 돌아간다. 과거보다 건강하고 오래 사는 세상이 되면서 요즘은 놀고먹는 사람이 천지다. 노인인구의 증가가 가져온 새로운 사회 변화다. 소득수준의 향상으로 그들의 생활도 비교적 윤택해졌고, 많은 사람이 개인별 편차는 있지만 국민연금 등 각종 연금으로 노후생활을 영위한다.

“백수가 과로사 한다”는 말도 정년으로 인한 은퇴 인구의 급증이 만들어 낸 신조어다. 은퇴자는 퇴직하고 나서도 출근할 때처럼 잘 지내고 있다는 뜻으로 많이 사용한다. 퇴직 후 허전해진 마음을 달래주려는 배려의 뜻으로도 주고받는 말이다.

때가 되면 누구나 백수로 돌아가야 하지만 한참 일해야 할 나이에 백수가 된다면 누가 봐도 딱한 노릇이다. 당사자의 답답한 심정이야 물론이거니와 백수가 된 자식을 바라봐야 하는 부모의 심정은 오죽할까 싶다. 사람은 나이에 맞게 때가 되면 각자의 위치에서 제 일을 해야 사람의 도리도 하는 법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청년 백수가 급증하는 모양이다. 구직기간이 6개월 이상인 장기실업자가 지난 상반기 중 월평균 14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취업을 아예 포기한 구직자 수가 50만 명을 넘었으니 보통 일이 아니다. 특히 30, 40대 연령층의 일자리가 줄고 있는 현상은 매우 충격적 일이라 할 수 있다.

직장이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소득원이다. 가정의 행복은 가장(家長)의 안정된 소득에서 시작한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직장은 개인의 꿈을 키워가는 곳이기도 하지만 우리사회 근간이 되는 가정을 지키기는 파수꾼 역할도 한다.

옛 말에 ‘천불생무록지인(天不生無祿之人)’이라 하여 “사람은 제 먹을 것을 타고 난다”고 하였다. 백수가 양산되고 있다는 현실이 답답할 뿐이다.

/우정구(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