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욱시인
▲ 김현욱시인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다. 지난 8월 14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모든 학교도서관에 사서교사나 사서를 1명 이상 의무적으로 배치하는 학교도서관진흥법 시행령 개정안이 심의, 의결되었다. 이전에는 ‘학교도서관에 사서교사나 사서 등을 둘 수 있다’였지만 이번에 ‘사서 등을 둔다’라는 의무조항으로 개정된 것이다.

전국에 초중고등학교는 약 1만2천여 곳이다. 규모나 내실에 차이는 있겠지만 학교도서관 설치율은 100%에 달한다. 반면, 사서교사나 사서처럼 도서관 전문 인력이 배치된 곳은 겨우 40%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비정규직이 대다수다. 그 나라의 과거를 보려면 박물관에, 현재를 보려면 시장에, 미래를 보려면 도서관에 가 보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나라의 미래를 책임지는 도서관 사서들의 현실이 이토록 암울해서야 되겠는가.

사서 교사가 없는 학교도서관은 책 대여점과 다를 바 없다. 그동안의 학교도서관은 사서 교사의 빈자리를 학부모회, 지역봉사자, 도서관 업무 담당 교사, 독서동아리 학생 등으로 겨우겨우 메꾸어 왔다. 보건실에는 보건 교사가 있고, 영양실에는 영양교사가 있고, 상담실에는 상담 교사가 있는데, 도서관에는 매일 다른 학부모나 지역봉사자가 번갈아 앉아 있거나 심지어는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을 때도 많다. 도서관 현대화 사업으로 수천만 원을 들여 도서관을 리모델링하지만, 정작 도서관의 심장이 될 사서교사가 없으니, 시간이 지나면 온기가 없는 삭막한 곳이 되고 만다.

칼라 모리스의 ‘도서관이 키운 아이’에 나오는 주인공 멜빈은 책을 좋아하는 아이다. 도서관에서 책만 보는 건 아니다. 사람의 온기를 느껴야 한다. 멜빈도 사서 선생님의 따뜻한 관심과 격려로 도서관에서 더욱 성장한다. 멜빈이 가장 좋아하는 도서관 행사는 ‘도서관에서 밤새워 책 읽기’다. 멜빈은 도서관에서 책뿐만 아니라 좋은 친구를 만난다. 훗날 멜빈은 공립도서관 사서 교사가 되어 또 다른 아이들이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게 돕는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아르헨티나의 작가이자 시인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는 “천국이란 단어를 들으면 사람들은 정원이나 궁전을 생각하겠지만, 나는 항상 천국을 도서관과 같은 곳이라고 상상했다.”고 고백했다. 알다시피 보르헤스는 시립도서관 직원을 거쳐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을 19년이나 지냈다. 보르헤스에게 도서관은 살아서 갈 수 있는 천국이며, 책은 수많은 천사였던 셈이다.

휴일이면 딸아이와 함께 집 근처 포은도서관을 자주 찾는다. 딸아이가 5살 때부터 들락날락했던 곳이지만, 아직 눈에 익은 사서는 없다. 근무하는 사서가 많기도 하지만, 대출도 반납도 모두 무인이어서 그런 탓도 크다. 고속도로 하이패스처럼 무인시스템이 속도면에서는 편리하지만, 난 아직 하이패스가 없을 뿐더러 어딘가를 다녀올 때는 꼭 차창을 열고 정산을 해야 마무리가 된 것같다. 예전에 도서카드에 빌린 사람의 이름을 기록하던 아름다운 추억을 소환해보는 것은 그것이 사람의 온기와 향기가 나기 때문이다. 아는 선배의 이름이 적혀 있으면 함께 그 책을 읽었다는 기쁨과 비밀을 공유하면서 말이다.

학교도서관에 사서 선생님이 오시면 아이들은 사서 선생님에게서 책만 빌려 오는 것이 아니다. 사서 선생님의 눈빛과 표정, 마음까지 빌리고 담아 온다. 관심과 안부가 오가고 도서관에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아이들의 발길이 자주 도서관으로 향하면서 도서관 문은 항상 열려 있고 거기, 바로, 사서 선생님이 엄마처럼, 아빠처럼 기다리고 있다는 상상만으로 행복해진다. 늦었지만, 1학교 1사서, 대환영이다. 당장 1학교 1사서 배치가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여러 어려움이 있겠지만, 비정규직이 아니라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학교도서관이 우리 아이들의 미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