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휘논설위원
▲ 안재휘논설위원

요 며칠 사이에 유력 여권인사들에 대한 이상한 두 개의 사법적 판단이 여론을 들끓게 하고 있다. 하나는 여비서 김지은 씨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정에 선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무죄’가 언도된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드루킹 댓글조작사건의 공범자로 지목된 김경수 경남지사에 대해 특별검사가 신청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사태다. 이 두 개의 결론은 ‘살아있는 권력’에게 턱없이 관대한 사법부의 이율배반적 적폐의 소산으로 기록될 조짐이 농후하다.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주최로 열린 ‘5차 성차별·성폭력 끝장집회’에서 변호사가 대독한 전 충남도 정무비서 김지은 씨의 편지내용이 애절하다. 김 씨는 “‘죽어야 제대로 된 미투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지금 당장 죽어야 할까’라는 생각도 수없이 했다”면서 사법부를 향해 “왜 내게는 묻고 가해자에게는 묻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김 씨는 “안희정에게는 왜 김지은에게 미안하다 말하며 그렇게 여러 차례 농락했나 물으셨나. 왜 페이스북에 ‘합의에 의한 관계가 아니었다’고 썼느냐고 물으셨나. 왜 검찰 출두 직후 자신의 휴대전화를 파기했느냐고 물으셨나”라고 절규했다. 김 씨는 “위력은 있지만, 위력은 아니다. 원치 않은 성관계는 있었지만 성폭력은 아니다. 뭐가 아니라는 것인가. 바로잡을 때까지 살아내겠다”고 다짐해 듣는 이들을 울렸다.

민심을 더욱 요동치게 만드는 일은 드루킹 댓글조작사건의 핵심인물로 지목된 김경수 경남지사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사건이다. 박범석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는 드루킹 여론 조작 게이트에 연루된 혐의로 신청된 허익범 특검팀의 김 지사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박 판사는 “다툼의 여지가 있고, 증거인멸 가능성도 소명이 부족하다”고 결정사유를 밝혔다. 성격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두 개의 사법부 판단은 ‘유권무죄(有權無罪)’의 이미지를 또렷이 남긴 10건의 특검법, 11차례 특검의 씁쓸한 기억을 반추하게 한다. 천양지차인 정치권의 반응부터 귀가 아프다. 안희정 전 지사에 대한 무죄판결에 대해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반응은 ‘안 지사 논평 없습니다’라는 문자 메시지가 전부였다. 그러나 신보라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미투운동에 대한 사형선고”라며 강력 반발했다.

김경수 지사 구속영장 기각에 대해서 김현 민주당 대변인은 “사필귀정”이라면서 “구속영장 청구는 불순한 정치행위에 불과했다”고 난타했다.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의 비탄은 섬뜩하다. 기각 당일 페이스북에 올린 김 원내대표의 ‘살아 있는 권력이랍시고 백정의 서슬 퍼런 칼로 겁박’이나, ‘망나니들의 핏빛 어린 칼날에 사법부의 정의도 한강물에 다 떠내려 보냈다’는 표현은 격앙된 심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종철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백원우 민정비서관은 웃으며 조사받으러 가고, 김경수 지사는 큰소리치고 주먹을 흔들었다“며 “결국 특검과 여당의 짜고 치는 고스톱판”이라고 싸잡아 공격했다. 극우논객으로 통하는 조갑제 대표의 이색주장이 눈길을 끈다. 그는 유튜브 방송에서 “김경수 영장 기각으로 이명박·박근혜 구속 재판 이유도 사라졌다”며 두 전직 대통령 석방을 촉구했다. 그는“불구속 재판이라는 원칙은 두 전직 대통령에도 적용돼야 한다. 두 사람은 거주가 확실하며 도망갈 염려가 없다”고 주장의 근거를 댔다.

안희정은 정말 무죄인가. 김경수도 무고한 인물인가. 사법부의 형평성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다. 사법부의 판단에 민심이 요동치는 나라는 온전한 나라가 아니다. 모시던 도지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수행 여비서의 경천동지할 폭로와 경찰이 노골적으로 은폐해 복잡하게 만든 여론조작 사건마저 ‘권자불패(權者不敗)’의 부끄러운 역사의 공동묘지에 묻어버릴 것인가. 경계없이 흔들리는 정의를 바라보는 안타까운 민심이 표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