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준포스텍 정보통신연구소 연구부교수
▲ 김경준포스텍 정보통신연구소 연구부교수

올 초에 필자가 아들에게 몇 천원짜리 저가 만년필을 줬다. 만년필로 글쓰고 분해도 해보고 장난감으로 생각하는 듯 보였다. 만년필 하나에 저렇게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중저가 제품을 사줬는데, 요즘은 아들과 필자가 만년필에 대한 기술 요소나 필감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대화 주제도 다양해 지고 있다.

국내 만년필 제조 기업은 3개 정도이고 그나마 생산되는 제품의 인지도가 낮아 사용하는 사람들도 많이 않은 게 현실이다. 이로 인해서 일반인들에게 만년필은 고가이고 중요한 문서에 서명할 때 사용하는 필기구로 인식되고 있는 것같다. 외국에서는 글씨를 처음 배울 때 만년필을 사용하고 여전히 즐겨쓰는 필기 도구이다. 볼펜처럼 종류도 다양해서 가격은 몇 천원에서부터 몇 십만원을 넘는 고가형 그리고 사용 용도에 따라 필기용, 사인용, 글씨를 멋스럽게 쓰기위한 캘리그라피용 등 다양한 제품군들로 구성되어 있다. 컴퓨터를 사용하여 문서작업, 이메일 쓰기 등등이 이루어 지는 데도 불구하고 확실한 시장과 문구 시장에서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데서 놀라움이 크다.

만년필은 1800년대 초 영국의 프레드릭 폴슈가 최초로 발명을 하고, 이후 독일 발명가 프리드리히 죄네겐이 닙으로 부르는 만년필 촉을 개발했다. 오늘날같은 상용화된 만년필은 우연히 기회에 만들어 졌다. 미국 뉴욕에서 루이스 에디슨 워터맨이 보험계약 중 말라버린 펜촉 때문에 나쁜 징조로 여기고 계약서에 서명을 하지 않아 계약이 성사되지 않았다. 이를 계기로 워터맨은 펜촉이 마르지 않는 만년필을 생각하게 되었고,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만년필을 만들었다. 국내에서는 만년필은 6·25를 전후해 대부분 미국에서 수입하는 제품군이 주를 이루고 있어 고가 제품군으로 특별한 용도 혹은 특별한 날 주고받는 선물용으로 인식이 되었던 것 같다. 만년필에 관련된 시장이나 산업에 대한 자료가 미비해 잘 알수는 없지만 2014년도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만년필의 해외 수입량은 56만여 개이고 이후 4여년의 시간을 감안해 보면 더 늘어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만년필과 관련된 산업은 산업에서 차지하는 영역이 크지 않았고, 새로운 산업을 탄생시키거나, 후속 산업으로 넘어가기 위한 가교 역할도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여전히 새로운 디자인과 제품군들을 출시하면서 전세계를 대상으로 글로벌 시장을 형성하고 유명 브랜드의 명성과 기업으로서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산업 생태계가 구축되고 그 생태계를 기반으로 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정부 혹은 특정 단체가 주도하는 산업 생태계는 한계가 있다. 워터맨의 사례에서 보듯이 현실의 문제점 해결 아이디어가 신산업이 탄생하는 계기가 됐다. 이를 기반으로 종이와 잉크를 생산하는 후방산업이 만들어 지고 수요가 늘어나면서 만년필의 성능 개선과 사람들의 기호를 충족하기 위한 여러가지 제품군이 생산됐다. 워터맨이 만든 기업은 사용자의 기호를 무시한 제품 생산을 고수하다 아쉽게 도산하고 말았다. 비슷한 시기에 유명한 만년필을 만드는 기업들이 탄생했고 지금도 100여년이 넘는 기업들이 여전히 전세계인을 대상으로 판매와 새로운 디자인의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산업 생태계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사회 문제해결 아이디어가 산업으로 연결되는 사회적인 문화와 산업적인 동인이 맞아 떨어져야 하는 것같다. 이외에도 신생기업을 발굴하기 위한 노력과 이를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정책 및 산업 구조가 중요하다. 또한 기업 측면에서 초기의 문제 해결을 넘어서 소비자의 요구를 지속적으로 반영, 발전시킬 수 있는 기업의 혁신 마인드가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