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전기 사용량의 13% 불과
주택용만 적용은 현실 괴리
가구원 수 등 고려 않은채
일괄 적용도 형평성 논란

폭염이 이어지면서 전기료 누진제 개편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원성이 들끓고 있다.

올여름 정부가 한시적으로 1·2단계 누진구간을 각각 100㎾h만큼 늘리기로 하는 완화책을 내놓았지만, 매년 반복되는 누진제 논란을 잠재우려면 전면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 이와 관련한 국회의 법안 발의가 이어지고 있지만, 국민이 고개를 끄덕일만한 획기적인 내용이 없다는 것이 전반적인 평가다.

16일 국회에 따르면 7월 말 이후 전기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지난달 말 이후 6개 안이 잇달아 발의됐다. 자유한국당 원유철 의원은 전기사용 기본공급약관을 작성하는 경우 주택용, 일반용 등 사용 용도에 따라 구분하되 전기요금 계산과 관련해 주택용 전기요금에 대해서는 누진제 대신 계절별, 시간대별 차등 요금제를 적용하는 내용의 ‘전기사업법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자유한국당 박대출 의원은 전력수요가 급증하는 혹서기(7∼8월)와 혹한기(1∼2월)에 누진제를 폐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도 전기판매사업자가 폭염이 있는 달의 주택용 전력요금의 30% 이상을 감면하고 이를 전력산업기반기금에서 지원할 수 있도록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 의원은 재해 발생 여부와 관계없이 일 최고기온이 섭씨 33도 이상인 날 또는 일 최저기온이 섭씨 25도 이상인 날이 10일 이상 계속되면 자연재난으로 보도록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일부개정안’도 대표발의한 상태다. 집권여당도 전기료 관련 법안을 내놨다.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난방수요가 많은 겨울철(12∼2월)과 냉방수요가 많은 여름철(7∼9월)의 누진제 부담을 줄이도록 약관을 조정하도록 하는 다소 소극적인 법안을 발의했다.

에너지전문가들은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우리나라가 에너지 복지는 크게 뒤떨어진다는 지적과 함께 전체 전기사용량의 13%에 불과한 주택용에만 전가하는 누진제는 현실과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반도 블랙아웃은 주택용보다는 산업용과 상업용 전기사용량에 귀결되고, 현재 전력수급 능력이 예전과 비교하면 탁월하기 때문에 가정용 누진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는 “우리나라 주택용 전기 사용량은 OECD 평균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면서 “현재 우리나라 전력 수급능력은 세계 최고수준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시대가 달라졌는 데도, 정부가 필요 이상의 절약을 강요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전기료 누진제는 1974년 유류파동 때 에너지를 아끼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쓰는 만큼 요금을 내는 것이 아니라,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그 이상의 요금을 더 걷는 징벌적인 성격이 있는 제도다. 중국·일본·미국·캐나다 등 외국에서도 주택용 전기료에 누진제를 적용하지만, 누진율 격차는 1.5배 안팎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처럼 누진율 격차가 3배에 달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프랑스와 영국, 스페인, 미국, 호주, 캐나다 일부 주는 누진제가 아예 없다.

주택용 전기료에만 누진제를 적용하는 현실도 문제지만, 각 가정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누진제 일괄적용도 형평성 논란을 일으키기 충분하다. 현재 누진제는 1인 가구와 4인 이상의 가구에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등 세대원 수가 많을수록 누진제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에너지를 낭비하는 사람에게 적용하려고 시행 중인 누진제 본연의 기능이 흐려진 모양새다. 포항시민 정광현(34·남구 상도동)씨는 “가정의 여건이 판이한데 일괄적용되는 방식도 문제다. 미국 캘리포니아처럼 비슷한 조건의 가구끼리 비교해 필요 이상으로 많이 쓰는 가구에 누진제를 적용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깜깜이 전기료도 문제다. 누진제 보완책으로 보급되고 있는 스마트 계량기(AMI) 보급이 지지부진하기 때문이다. AMI는 두꺼비집에 전력 소비량 센서를 부착하고, 그 데이터를 모아 실시간 전력 사용량과 예상 사용량, 예상 전기 요금까지 알려주는 장치다. 한전에 따르면 AMI는 올해 6월까지 650만가구에 보급됐다. 한전은 2016년 12월에 당시 330만가구에 보급돼 있던 AMI를 2020년까지 2천250만가구로 늘리겠다고 밝혔으나, 2년여 동안 320만가구에만 보급된 실정이다. 이는 목표치 대비 29% 수준이다. 경북도는 2016년부터 공동주택 2만가구에만 올해 말까지 AMI보급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시민 김민아(41·여·북구 장성동)씨는 “스마트계량기가 있으면 실시간으로 에너지 사용량을 알 수 있어 행동 선택의 폭도 넓어지고 마음의 압박도 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안찬규기자 ack@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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