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영 현

불 이는구나 수수밭 머리

팔월의 해가 불을 지르고

풀벌레소리 자욱이 피어나는구나

가슴 깊은 곳 불꽃 하나 살아

살덩이 그늘진 풀꽃으로 피었구나

수수밭 지나 담배밭 건널 때

어디엔가 늙으신 어머니 모습

뛰어봤자 경상도 넘어봤자 전라도

불 이는구나 푸른 숲 머리

머언 하늘에

정찰기 한 대 떠간다

생리조차 끊어진 채

눈 깊은 골짜기 달리던 여전사(女戰士)여

편히 잠드시라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은 등성이마다 계곡마다 가슴 아픈 서사를 품고 늘 푸르게 깨어 있다. 시인은 해방공간과 한국전쟁 당시의 지리산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빨치산들의 아픈 이야기 하나를 떠올리고 있다. 두고온 어머니와 고향마을을 그리다 최후를 맞은 어린 여자 파르티잔의 무덤을 떠올리며 민족의 비극을 그려내고 있음을 본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