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지난 1994년에 생긴 특수활동비를 24년만에 폐지하기로 했다. ‘눈먼 돈’이라는 천박한 별칭으로 불리면서 세금으로 충당됐던 정치인들의 불투명한 쌈짓돈이 사라지게 된 것은 일단 환영할만하다.

그러나 이 문제는 그냥 무 자르듯 싹둑 잘라내고 끝낼 문제가 아니다. 제도개혁을 통해서 합목적적인 비용은 쓸 수 있도록 다른 시스템을 보완해주는 것이 현명한 접근이다. 제도개혁은 철저하게 ‘생산성’과 연계되는 것이 옳다.

국회의원들의 특수활동비는 권위주의 시대에 만들어진 기득권이자 과감히 떨쳐야 할 권위시대의 단물이었다는 점에서 일단 전면 폐지되는 것이 국민감정에 부합한다. 매년 60억~80억 원에 이르는 혈세가 ‘기밀유지’라는 명목으로 누가, 어떤 이유로 얼마를 사용했는지 알 수 없도록 집행됐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임에 틀림없다. 근거도 없고 용처조차 비밀인 특활비는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모두 폐지하는 것이 맞다.

바른미래당은 ‘특활비 전면 폐지’를 당론으로 적극 추진해왔다. 반면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당초 영수증 처리를 통한 특활비 양성화를 주장했다. 이에 ‘거대 양당이 합심해 기득권을 지키려 한다’는 비판이 일자, 뒤늦게 민주당과 한국당도 전면 폐지로 입장을 선회한 것이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의정사에 남을 쾌거를 이뤘다”고 감탄사를 던졌다. 그러나 내용적으로 교섭단체 몫 특활비만 폐지하고, 국회의장과 상임위원장 몫 특활비는 금액을 절반 가량 삭감하는 선에서 존치시키기로 해놓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문 의장을 비롯한 주역들이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이제 새롭게 추구될 제도개혁 방향은 콘셉트 자체가 달라야 한다. 국회를 중대한 ‘법률·정책공장’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 옳다. 필요경비를 조달하지 못해 국회의원의 활동이 위축되는 것은 거시적으로 볼 때 국가적 손실이다. 공장의 기계들을 무작정 세워놓고, 불까지 꺼놓고는 비용절감을 흐뭇해하는 행태야말로 또 다른 형태의 포퓰리즘 바보짓이다. 구체적으로 용처를 명시한 ‘활동비’를 사무처에 청구해 사용한 뒤 사후 심사를 받는 방식으로 돈을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맞다. 그 투명성을 정밀하게 검증하는 일은 또 다른 문제다.

좋은 정책, 좋은 법률을 만들어내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비용을 놓고 시비를 거는 것은 후진국형의 어리석은 짓이다. 국회의원들이 돈을 쓴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허투루 쓰거나 사적으로 사용하는 불합리가 문제의 핵심이다. 어느 누구도 시비를 걸기 어려울 만큼 완벽한 제도개혁 방안이 창출되기를 희망한다. 이 논란은 ‘돈 안 쓰고 아무것도 안 하는 정치’가 목표가 아니라, ‘돈을 쓰되 제대로 일하는’ 정치가 최후의 목적지가 되는 것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