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청각(臨淸閣, 보물 제182호) 전경. /안동시 제공

항일독립투쟁 과정에서 자치단체를 만들고 학교를 설립해 많은 독립군을 양성할 수 있었던 것은 함께 망명길에 오른 여성들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임청각(臨淸閣, 보물 제182호) 석주(石洲) 이상룡 일가 사람들은 1896년 의병항쟁을 시작으로 만주 항일투쟁사에 빛나는 족적을 남겼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8·15 광복절 기념사에서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산실이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이라고 언급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은 임청각은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이자 9명의 독립 운동가를 배출한 독립운동의 성지다. 대를 이어 많은 독립 운동가를 배출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들을 지켜낸 3대 종부(김우락-이중숙-허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독립운동에 헌신한 안동 ‘임청각 3대 종부’
석주 이상룡 일가, 만주로 망명… 독립운동가 9명 배출
부인 김우락·며느리 이중숙·손부 허은까지
만주 벌판서 남자들 대신 농사 지으며 자식들 건사
식사 조달·군복 제작 등 무장독립운동 지원에도 헌신

석주 이상룡은 나라를 잃자 항일투쟁을 위해 만주로 망명한다. 부인 김우락(金宇洛 1854∼1933)도 57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같은 길에 오른다. 며느리 이중숙(李中淑 1875∼1944)도 함께 했음은 물론이다. 당시 김우락은 ‘해도교거사’에서 “비록 여자라도 나라 잃은 울분이 생기는데, 애국지사의 비통함은 당연지사”라며, 망명길을 대의(大義)로 여겼다. 김우락은 마을주민 대다수가 독립운동가인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내앞마을)에서 태어났다. 큰 오빠는 독립운동가 김대락이며, 막내 여동생이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실명한 김락이다.

여인과 아이들까지 이끌고 들어간 만주에서의 정착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지독한 굶주림과 ‘왜놈보다 더 독하다던’ 만주 벌판의 추위를 변변치 않은 입성으로 견뎌내야 했으며, 낯선 땅의 풍토병에도 맞서야 했으니 그 어려움은 말로 다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1910년대 만주로 망명한 독립 운동가들의 방략은 독립전쟁론이었다. 군사를 양성해 일본과 전쟁을 통해 독립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여성들의 역할 또한 중요했다. 이들은 동포들의 생활 안정과 동포사회 확장에 기여했고, 자치단체 유지에도 중요한 부분을 담당했다. 민족의 동량을 양성하는 데도 기여했으며 독립전쟁에서 대원들의 의·식 문제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특히 망명길 당시 어린 나이의 유소년들을 독립운동가로 길러 투쟁을 지속할 수 있도록 했다.

석주의 손자 이병화와 1922년 혼인한 손부 허은(許銀 1907∼1997)은 남자들의 항일투쟁을 지원하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허은은 경북 선산군 구미면 임은리(현 구미시 임은동) 출신이다. 부친인 일창 허발과 어머니 이산운(영천 이씨) 사이에서 3남 1녀 중 외동딸로 태어났다. 조부는 범산 허형이며, 이육사의 어머니 허길이 바로 그녀의 고모다. 또 의병장으로 활약하다가 순국한 왕산 허위와 의병을 이끌었던 방산 허훈, 그리고 성산 허겸이 모두 그의 재종조부이다.

허은은 혼사 당시 자신에 대해 “항일투사 집안에서 태어나 항일투사의 집으로 시집간 것은 운명이었고, 이천 팔 백 리 시집가는 길은 앞으로 전개될 험난한 인생을 예고하는 길이기도 했다. 당시 친정은 영안현 철령하에 시댁은 화전현 완령허에 있었다. 조국의 운명이 순탄했으면 그리 되었겠는가”라고 훗날 회고했다.

▲ ‘독립군의 어머니’ 임청각 종부 허은 여사. /경북독립운동기념관 제공
▲ ‘독립군의 어머니’ 임청각 종부 허은 여사. /경북독립운동기념관 제공

또 허은은 1932년 귀국할 때까지 서로군정서 회의와 같은 각종 회의가 집에서 이뤄지다 보니 식사조달을 물론 대원들의 군복을 만드는 등 무장독립운동 지원에 헌신했다. 국가보훈처는 허은 여사의 이런 공로를 인정해 제73주년 광복절을 맞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이처럼 만주 항일투쟁사에서 임청각의 독립운동가 뒤에는 그들을 지켜낸 3대 종부가 있었다. 이들은 독립운동을 하느라 집을 비우기 일쑤인 남자들을 대신해 농토를 개간하고 농사를 짓고 자식들을 건사했다. 심지어 아까운 자식들을 손도 못 쓰고 속절없이 앞세워 보내야 했다.

강윤정 경북도 독립운동기념관 학예연구부장은 “독립운동에 대한 기록 대부분이 남성 중심으로 서술돼 있고 여성들에 대한 기록이 부족해 여성독립운동가 발굴이 쉽지 않다”며 “여성들에 대한 기록을 찾는다고 해도 이를 뒷받침할 만한 자료를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광복절에는 허은 여사를 비롯해 26명의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포상이 이뤄진다”며 “이를 계기로 앞으로 여성 독립운동가 발굴이 활발히 이뤄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손병현기자why@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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