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교수가 권력을 쫓아다니는 ‘정치교수’가 되면 교수의 책무를 다할 수 없듯이, 군인도 ‘정치군인’이 되면 본연의 사명인 국가안보에 충실할 수가 없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정치군인들이 날뛰는 나라의 안보는 위태롭고, 정치는 후진적이다.

최근 국군기무사령부의 ‘계엄령 검토 문건’과 관련하여 드러난 군 간부들의 일련의 행태(行態)를 보면 말문이 막힌다. 국방부와 예하 조직인 기무사령부의 대립, 국방장관(예비역 대장)과 기무부대장(대령)의 ‘거짓말 공방’, 기무사령관(중장)과 기무사 참모장(소장) 및 5처장(준장)의 상충되는 진술을 보면서 ‘이게 군대인가’라는 한탄이 저절로 나온다.

명예를 생명과 같이 여기는 군에서 ‘거짓말 공방’이 벌어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약 전시에 군인이 거짓말을 한다면 이적(利敵)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사형에 처할 수도 있다. 더욱이 상명하복(上命下服)이 엄격한 군에서 대령이 면전에서 장관을 비판하고, 기무사령관은 그의 참모들과 노골적으로 대립한다면 이것은 이미 군대라고 할 수 없는 조직이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가? 그것은 바로 군인이 소신없이 권력의 눈치를 보는 ‘정치군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기무사령부는 과거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정치개입으로 악명이 높다. 군이 국가위기를 명분으로 쿠테타를 일으켜 정권을 찬탈(簒奪)하는가 하면, 민간인을 사찰하고 선거에 개입하는 등 정치군인들의 폐해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러한 정치군인의 문제는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도 책임이 있다. 역대 대통령들이 군의 ‘정치적 중립’을 철저하게 보장하고 ‘공정한 인사’를 했더라면 정치군인들이 발붙이지 못했을 것이다. 대통령은 군이 ‘국가에 충성’할 것을 요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충성’하는가의 여부, 즉 ‘정치적 성향’이 더 중요한 인사기준이었다.

이는 군인의 입장에서 볼 때 ‘별 달기가 하늘의 별’과 같은 상황에서 최고 인사권자의 의중을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따라서 군이 명예롭게 국가안보에 전념할 수 있으려면 대통령은 물론이고 군 스스로의 대오각성(大悟覺醒)이 절실하다. 우선 무엇보다도 대통령은 군의 최고통수권자라는 점에서 그 책임과 역할이 매우 크다.

현재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기무사의 개혁이 성공하려면 대통령의 군에 대한 ‘확고한 정치적 중립의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청와대는 기무사의 계엄령 검토 문건 관련자들의 조사 및 처벌에 있어서 공명정대해야 하며, 이 기회를 통하여 군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나아가 대통령은 정치군인을 배제하고 ‘참 군인’을 우대하는 등 군대문화를 대대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하극상(下剋上)을 벌이는 정치군인들을 방치해 둘 경우에는 마침내 대통령의 군통수권마저도 위험해질 수 있다. 대통령은 눈앞에서만 충성을 맹세하는 ‘정치군인’과 묵묵히 국가안보에 헌신하는 ‘참 군인’을 구별할 수 있는 혜안(慧眼)을 가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군인은 ‘생명과도 같은 명예’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장군들은 장군답게 말하고 장군답게 행동하라. 국가와 국민의 안위(安危)에 관계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계급장 뗄 각오를 하고 대통령에게 직언을 해야 한다. 별 하나 더 달려고 권력에 아부하는 장군은 이미 장군이 아니다. 군인정신을 잃어버리고 정치권력에 비굴해진 장군들에게 국가에 대한 희생과 헌신을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