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정원’
김유진 지음·문학동네 펴냄
소설집·1만3천원

▲ 김유진

“혼자라는 느낌이 들 때면 몸속 깊은 곳에서 즉각적으로 온기가 피어났다. 마치 고통에 반응하는 엔도르핀처럼, 솟아난 온기는 아담한 동굴의 형태로 그를 에워쌌다. 동굴의 내부는 오래전 마주잡은 K의 손바닥만큼이나 부드럽고 따듯해, 태희는 그 안에서 안전하게 고독을 즐길 수 있었다. 그즈음 그가 읽는 책에는 유폐와 황홀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곤 했다.”(‘보이지 않는 정원’중)

세련되고 강렬한 이미지와 아름답고 단단한 문장으로 인상적인 소설세계를 꾸려나가고 있다는 평을 받는 작가 김유진(37)씨가 세번째 소설집 ‘보이지 않는 정원’(문학동네)을 펴냈다.

이번 소설집에는“비극을 겪은 이후의 상당히 강렬하고, 그러면서 할 얘기는 다 하는 세련된 소설”(문학평론가 신수정)이라는 호평을 받은 ‘비극 이후’를 비롯해 2012년 여름부터 올해 봄까지 꾸준히 쓴 총 여덟 편의 소설이 실렸다.

문학평론가 김나영은 “(김유진의 소설은) 말(언어)로 쓰이고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몸짓과 소리를 떠올리게 함으로써 그 의미를 증폭시키는 이야기”라고 평가했다.

젊은작가상과 황순원신진문학상을 받은 작가는 음악, 무용, 미술과 관련한 풍부한 이야기가 녹아들어 있는 그의 소설을 통해 독자의 감각을 더 예민하게 일깨운다.

소설집 첫머리에 놓인‘비극 이후’는 비바람이 몰아치는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 이륙한 비행기 안의 상황을 묘사하며 시작된다. “다른 비행기는 결항이라면서 왜 네 것만 아니야? 그러다 사고라고 나면 어쩌라고 그래?”라며 불안해하는 엄마에게 수인은 “죽으면 뭘 어떻게 해, 할 수 없지”라고 대꾸할 뿐이다. 수인이 죽음에 초연할 수 있는 건, 이번 여행이 연인과 이별한 뒤 충동적으로 떠난 것이기 때문일까. 그러나 추락할 듯 기체가 급강하하기 시작하자, 막연하게 상상했던 죽음의 모습은 생생하고 강렬하게 수인의 몸을 통과한다. 자신도 놀랄 만큼 큰 소리로 “무서워”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목적지에 도착하자 비는 그쳐 있지만, 빽빽한 안개로 둘러싸인 사방은 비행기 안과 다를 바 없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지만 어떻게든 앞으로 걸어가야 하는 현재의 상황은 옛 애인을 애도하는 혹은 애도할 수 없는 ‘비극 이후’의 시간이 돼,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공간 안으로 독자를 강하게 끌어당긴다.

연인의 죽음 혹은 연인과의 이별 때문에 혼자 남게 된 인물들뿐만 아니라 “홀로이고자 하는 충동”으로 ‘혼자 됨’을 선택한 인물의 모습 또한 이번 소설집의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다. 표제작 ‘보이지 않는 정원’은 ‘두 사람’이 아니라 ‘혼자서’ 하는 사랑의 풍경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완만한 산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그 앞으로는 강이 끝없이 펼쳐지는 마을, 아름답지만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고요한 이곳에서 나고 자란 ‘태희’는 어머니를 도와 민박 일을 하며 지낸다. 이 조용하던 공간에 소설가 오정이 머물게 되면서, 평화롭던 태희의 일상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한다. 혼자 있고자 하는 욕망이 너무나 강렬할 때 우리는 어떤 선택까지 하게 될까. ‘보이지 않는 정원’은 그 선택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하는 대신, 타인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강한지를 단정하고 고요한 공간과 대조해 인상적으로 드러낸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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