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만큼 여름날이 지루한 적도 드물었다. 전국이 가마솥처럼 달아올라 아우성이다. 올해 최고 기온이 111년 만에 신기록을 수립했다. 대구 등 전국 일부 도시에서 낮 기온이 최고 40℃를 넘겼다. 상상만 하던 기온이 현실이 된 꼴이다.

질병관리본부는 올해 우리나라에서 3천500명이 넘는 온열질환자가 발생했고, 이 중 43명이 숨졌다고 발표했다. 선풍기나 에어컨이 없던 시절 우리는 이런 온열질환자를 두고 ‘더위 먹었다’고 불렀다. 더위 먹은 환자가 보건당국 집계 이래 최고 수치를 기록한 것이다.

오죽하면 일본 근해를 지나가는 태풍이 한반도를 덮쳤으면 하는 염원까지 했을까. 한반도를 비켜가는 태풍에 대한 아쉬움이 깊숙이 남았던 여름날이다. 더위를 식히는 데는 에어컨만 한 것도 없다. 그런데도 에어컨 틀기가 겁났던 여름이다. 비싼 전기료 때문이다. 몇해전 맞았던 전기료 폭탄이 생각나 에어컨을 틀면서도 가슴은 내내 조마조마했다.

정부가 한여름이 지나 한시적으로나마 가정용 전기료를 완화해 주겠다고 밝혔으나 속이 시원할 만큼은 아닌지 국민 반응도 대체로 시무룩하다. 정부 정책이 뒷북을 쳐 ‘빛 좋은 개살구’가 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지난 7일은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다는 입추(立秋)다. 우리 조상은 이날부터 입동(立冬)까지를 가을이라고 불렀다. 더위가 한풀 꺾일듯한데 여전히 기승을 부린다. 다음 절기인 처서(處暑)까지도 이 더위가 심술을 부릴지 알 수 없으나 세월 앞에 장사는 없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 입도 비뚤어 진다”는 속담이 있지 않은가. 극성을 부리던 파리, 모기도 어느 듯 사라지고 귀뚜라미가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다. 거자일소(去者日疎)라 했다. 시간이 지나면 잊어지고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것이다.

고진감래(苦盡甘來)일까. 수확의 계절 가을이 코앞에 와 있다. 짜증나고 힘들게 했던 올여름 폭염도 이젠 떠날 시간이 됐다. 기쁠 때도 교만하지 않고, 절망에 빠졌을 때도 좌절하지 않으라는 솔로몬 왕의 명언이 생각이 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우정구(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