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호<bR>서울취재본부장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어느 세계적인 기업의 입사시험 면접에 나온 문제다. 폭풍우가 몰아쳐서 모든 사람들이 대피를 하려고 이리저리 몰려다닐 때, 나는 승용차를 타고 안전한 곳으로 피하려 이동중인 상황이라고 가정하자. 탈 수 있는 자리가 단 하나 남은 상태에서 차가 끊긴 버스 정류장을 지나는 데, 몇 사람이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에는 빨리 병원에 후송해야 할만큼 몸이 아파 보이는 할아버지, 내 인생에 다시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이상형의 미녀, 내가 반드시 은혜를 갚겠다고 맹세한 친구 등 3명이었다. 여기서 태울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 뿐이라면 여러분은 누구를 차에 태울 것인가를 묻는 질문이었다. 언뜻 생각하면 사회통념상 몸이 편찮은 할아버지를 태우는 게 맞다는 대답도 옳고, 일생에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 같은 이상형 미녀를 안 태웠다가는 평생 후회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사람이 은혜를 입었으면 반드시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직장동료를 태우는 것도 틀리지 않는 답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수 천명의 면접자 중에 이 질문에 만점을 받은 사람은 단 한명이었다. 그가 내놓은 답은 사고의 틀을 깨는 파격적인 내용이었다. 그는 “자동차 키를 자신이 은혜입은 직장동료에게 주어서 몸이 아픈 할아버지를 병원으로 모셔다 주게 하고, 자신은 이상형의 미녀에게 데이트 신청을 한다”고 답했다. 파격의 지혜는 세상 많은 문제에 무릎치는 답을 내놓는다.

대구·경북지역을 텃밭으로 삼아온 자유한국당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사태로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은 뒤 새롭게 당을 추스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당이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을 맡았던 김병준씨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내세우고 보수가치의 재정립을 기치로 내걸었고, 내분만 불러일으킬 당내 인적청산보다는 당내 통합에 힘쓰는 한편 민생입법, 정부의 실정에 대한 비판 및 대안제시에 힘을 쏟고 있는 것은 나름 최선의 선택이란 반응들이다. 어떻든 정반합이요, 궁즉통이라 했다. 한국당의 힘겨운 처지가 훗날에는 입에 쓴 약이 될 수 있다. 다만 그 노력들속에 기존의 틀을 깨는 발상의 전환도 있어야 겠고, 상당한 기간 공을 들이는 노력들이 전제돼야 할 게다.

중국에는 모죽(毛竹)이란 대나무가 있는데 이 대나무는 제 아무리 기름진 땅에 심어도 5년이 지날 때까지 싹을 틔우지 않는다고 한다. 성장에 필요한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해줘도 5년동안은 거의 성장을 멈춘 것처럼 눈에 띄는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5년이 지나면 하루에 70~80cm씩 자라기 시작해 불과 6주만에 30m까지 성장, 가장 굵고 우람한 대나무가 된다. 이 대나무가 놀라운 것은 5년내내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땅을 파보면 5년간 대나무의 뿌리가 땅 속 깊숙한 곳에서 사방으로 10리가 넘게 퍼져 나가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대나무를 빠르게 자랄 수 있게 했던 원동력이요, 그 어떤 태풍에도 쓰러지거나 부러지지 않을만큼 튼튼한 대나무로 자리잡게 되는 이유라는 것이다. 우리들 눈에는 아주 작은 순 말고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5년이라는 세월동안 모든 성장은 땅 밑에서 이뤄지는 셈이다. 그렇게 5년을 숨죽인 듯 세상에 뻗어나갈 날 만을 위해 철저히 준비해서 모죽은 그렇게 멋지고 당당한 모습으로 세상에 자태를 드러낸다. 절개와 지조를 상징하는 대나무 가운데서도 이 모죽이란 대나무는 다른 나무와 달리 숲을 이루기 위해 뿌리내림과 넓힘에 필요한 인고의 세월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자주 인용된다. 마음 먹고 시작한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빠른 성과를 보이지 않는다고 초조해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우리 밑에는 깊고 강건한 뿌리가 성장하고 있는 것이라 믿어야 한다. 그저 정치판에서의 형세나 역경 많은 인생에서의 굴곡을 헤쳐나갈 때 파격과 인내의 지혜가 우리에게 임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