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지진 그 이후’… 이재민 주거시설 가 보니
대부분 주민들 체념 상태
“총리·정치인 왔다갔지만
달라진 것 하나도 없고
언제 나갈지 막막하기만”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당장 돌아갈 집도 없고, 언제 내집을 마련해 돌아갈 지 기약도 없고, 그저 막막하기만 합니다.”

‘11·15지진’피해로 보금자리를 잃고 임시주거시설에서 살고 있는 이재민들의 푸념이다.

지난 6일 저녁 ‘○호실’로 이름 붙여진 집들이 늘어선 포항시 북구 흥해읍 약성리 ‘희망보금자리 이주단지’를 찾았다. 보름이 넘도록 줄곧 38℃를 오르내리는 폭염이 이날은 한풀 꺾여 이재민들이 삼삼오오 벤치에 모여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별다를 것 없는 그저 ‘옆집 사는 얘기’였다.

기자가 자리를 함께 하고 말을 걸었지만 부산스럽지도, 기쁨이나 슬픔, 분노처럼 극적인 감정도 내뱉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한숨 섞인 한마디와 함께 얼굴엔 ‘우리도 잘 모르겠다’는 표정만 드러내보였다. 지쳐있는 모습이 역력했다.

‘9호실’에 거주한다는 80대의 A씨는 “혼자 생활하고 있지”라고 말했다. “대성아파트에서 살다 지진이 났고, 흥해체육관에서 머물다 음력 설아래(설 직전) 이곳에 들어왔다”는 A씨는 “다리가 불편해 멀리 움직이지 못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포항 시내 주변으로 이사갈 생각도 했지만, 다니는 병원이 집 근처라서 흥해 인근을 떠날 수 없었다”는 그는 “차선책으로 임시주거시설에 살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매번 자신의 컨테이너 집 문을 열 때마다 살던 집이 생각난다”며 목이 감기는 듯 했다.

A씨는 “가끔 집 밖에 나와 그늘막에서 쉬곤 하는데, 다시 들어가려고 문을 열면 그새 달궈진 컨테이너 열기에 숨이 턱턱 막힌다”며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집이 아니다보니 잠시만 에어컨을 꺼 두면 수십분을 집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말했다.

‘20호실’에 살고 있는 B씨도 이재민 대피소인 흥해체육관에서 약 100일을 눌러앉았다 지난 2월 중순께 이곳에 들어왔다.

‘지난해 11월 15일 이후, 이낙연 국무총리를 비롯한 정부 관계자와 정치인들이 많은 약속을 했는데 뭐 좀 달라진게 있느냐’는 질문에 B씨는 그냥 고개를 저었다. “두 손을 맞잡고 악수하며 ‘정부가, 또는 정당이 해결하겠다’는 약속은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며 기자에게 원망섞인 표정을 지었다. B씨는 “전기세나 수도세도 앞으로 문제이긴 하지만, 앞으로 이 생활을 얼마나 더 해야할 지 모르는 막막함이 너무 크다”며 “이재민들과 지진에 관한 장기적인 대책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희망보금자리 이주단지’에는 이런 사람들이 모두 33가구에 이른다. 지진 발생 직후 ‘기울어진 아파트’로 매스컴을 타며 전국에 널리 알려진 대성아파트와 경림뉴소망아파트, 대웅파크 등 공동주택 거주자들이 많고, 진앙지에서 가까운 양성리, 망천리 등의 개인주택 피해주민들도 있다. 모두 지진의 충격으로 건물이 심각하게 갈라지거나 무너질 위험이 있어 ‘주거 불가능’ 판정을 받은 곳들이다. 누구의 탓도 아닌 천재지변 때문이지만 이들에게는 아직도 지진에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이들의 가장 큰 걱정은 지금 당장의 ‘크게 오를 전기세’가 아니다. 다가오는 겨울과 잠시후 맞을 여름, 그리고 겨울…. 올 여름같은 혹독한 더위와 추위를 좁은 공간에서 견뎌야 하는 생활을 언제까지 이어가야 할지 모를 불확실성과 그에 따른 상실감이 문제의 근원으로 보인다.

당장 한국전력에서 이재민 임시주거시설의 전기요금 감면 기간을 3개월 연장하다는 소식을 전했지만 크게 반기는 표정이 아니었다. 일시적인 미봉일 뿐, 언제까지 이 곳에서 지내야 할 지 알 수 없는 형국에서는 ‘밑빠진 독에 물 붓기’밖에 되지 않기 때문으로 보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이재민은 “설명도 많았고, 계획안부터 해주겠다는 공약도 많았지만, 무엇하나 이루어진 것 없이 세월만 보내고 있다”며 “꿈도 희망도 없이 이렇게 무의미하게 살다 가는 게 아닌가 싶어 마음이 편치 않다”고 말했다.

흥해체육관 이재민 대피소에도 여전히 172가구 378명의 이재민이 머물고 있다. 포항 지진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은 채 쓰라린 고통을 안겨 주고 있다. 우리 사회가 이재민 주거환경 및 대책에 대한 적절한 대안이나 방향성을 제시해 희망의 끈을 다시 쥐어줘야 함을 절감하며 기자는 ‘희망보금자리’를 무거운 발걸음으로 나섰다. /이바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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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바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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