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잃은 보금자리… 갈 길 먼 복구작업… 뒤숭숭한 여름
주인 잃은 보금자리… 갈 길 먼 복구작업… 뒤숭숭한 여름
  • 이바름기자
  • 등록일 2018.08.07 21:26
  • 게재일 2018.08.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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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시리즈 포항 지진 그 이후
② 아물지 않은 상처
▲ 포항지진으로 전파돼 입주민들이 모두 떠나버린 흥해대웅파크. 8개월째 주인을 잃은 아파트 마당에 잡초만 무성해 을씨년스럽다.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 포항지진으로 전파돼 입주민들이 모두 떠나버린 흥해대웅파크. 8개월째 주인을 잃은 아파트 마당에 잡초만 무성해 을씨년스럽다.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11.15지진’직후 ‘기울어진 아파트’로 유명세를 탄 대성아파트는 9개월이 지난 동안 많이 변해 있었다. 7일 찾은 현장은 주인들이 모두 떠나고 건물에 사람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유령의 집’처럼 적막했다.

출입이 통제된 D·E·F동은 풀색만 짙어가고 있었다. 화단에는 사람의 손길이 전혀 미치지 않아 강아지풀 등 잡초만 무성했다. 한켠에는 누군가가 버리고 간 소파와 의자가 널려있고, 넓은 주차장은 남은 것 하나 없이 텅 빈 상태다. 무엇하나 정상이 아니었다.

지진 이후 초창기 정·관계 인사들과 건축 전문가들로 북새통을 이뤘지만, 현재는 흡사 전쟁통에 방치된 폐허처럼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아파트 입구에서 출입을 통제하던 경찰이동초소에도 주인이 사라진지 오래다. 무너져내린 담장 주변으로는 출입금지를 알리는 ‘폴리스라인’만 뒤엉켜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인근의 경림뉴소망타운 역시 마찬가지. 우거진 풀숲 너머로 인적을 찾아볼 수 없는 주차장에는 누군가가 버리고 간 장롱, 이불, 옷가지 등만 널브러져 있다.


지진으로 기울어진 ‘아파트’
버려진 물건들·텅빈 주차장에
인적 끊기고 잡초만 무성
‘유령의 집’ 연상 폐허 방불
정부·지자체 참여 뒷전 속
전파 5곳 주민들 새단장 준비
‘필로티 구조’ 안전성 논란에
9월부터 3층이상 건축물 대상
시공과정 영상촬영 의무화 추진
市, 이재민 전기요금 감면 연장
“예고없는 지진에 철저한 대비를”



대성아파트 인근 주민 김모씨는 “초창기에는 짐을 가지러 몰래 들어가는 주민들이 더러 눈에 띄곤 했는데, 최근에는 이런 모습도 보기 어렵다”며 “인적이 끊긴 지 오래”라고 말했다.

최근 이곳은 또다른 우범지대로 전락한 실정이다.

사람의 발길이 끊긴 틈을 타 이곳에서 이재민들이 남겨둔 물품 등을 훔치던 좀도둑이 경찰에 붙잡혔다. 일당 두명은 새벽시간을 틈타 경림뉴소망타운과 대성아파트에 들어가 에어컨 구리케이블을 훔쳐 달아나다 붙잡혔다. 100여 만원도 되지 않은 피해였지만, 장기간 방치해 둘 경우 또다른 범죄가 발생할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재민들은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건축물에 대한 활용방안이 구체적으로 계획된 것이 없는 점이 걸리는 대목이다. 큰 틀에서 흥해지역 도시재생 뉴딜사업과 관련한 재개발·건축으로만 논의되고 있을 뿐, 최종 합의가 도출된 단계까지 접어들지 못했다. 저당잡힌 집이 있는 등 각 세대마다 소유관계가 달라 실제 건물 철거 합의를 보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재민들이 짧게는 2년, 길게는 수년 동안을 기약없이 무주택자로 살아야 할 처지다.

포항지진으로 안전성 논란에 휩싸인 ‘필로티 구조’ 건물도 여전히 그대로다.

필로티는 주차장 확보를 위해 1층을 비운 채로 기둥만 세우고 2층부터 건물을 짓는 방식이다. 지진 이후 장성동 일대 필로티 구조의 건물 기둥에 심각한 균열이 생겨 구조 안전성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 건물 기둥이 으스러지면서 붕괴위험까지 생겨 경찰관이 배치돼 주변인의 출입을 통제하기도 했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크리스탈 원룸은 지진 발생 이후부터 현재까지 휀스로 둘러쳐져 접근이 막혀 있다.

다행히 지진 당시 피해를 입었던 장성동 일대 필로티 구조 건물은 대부분 1층 기둥을 두껍게 추가 시공하거나 기둥 수를 늘리는 등 조치가 취해지고 있다. 피해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대다수의 건물들은 여전히 추가 시공없이 그대로 남아있다. 앞으로 언제 닥칠지 모르는 지진에 대한 대비가 없는 셈이다. 특히, 설계도면과 다르게 시공해 나중에 부실공사의 의혹이 생기더라도 ‘잃어버렸다’는 식으로 잡아 때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노리고 있는듯하다.

▲ 11.15강진으로 전파 판정을 받아 주민이 떠난 포항시 흥해읍 경림뉴소망타운과 대웅파크에는 버려진 가재도구와 쓰레기가 방치되어 있고, 아이들이 떠난 놀이터에도 잡초만 무성하다.  /이용선기자
▲ 11.15강진으로 전파 판정을 받아 주민이 떠난 포항시 흥해읍 경림뉴소망타운과 대웅파크에는 버려진 가재도구와 쓰레기가 방치되어 있고, 아이들이 떠난 놀이터에도 잡초만 무성하다. /이용선기자

복구작업은 이제 첫 삽을 뜬 걸음마 단계다. 갈 길이 멀다.

느린 걸음이지만 지난해 11월 15일 규모 5.4 지진으로 피해가 난 공동주택 가운데 처음으로 철거되는 곳이 나왔다. 지난 6일 지진 피해로 사용 불가 판정을 받은 포항시 북구 환호동 대동빌라 철거에 들어갔다. 주민이 구성한 재건축사업추진위원회가 지난달 26일 포항시와 협의를 거쳐 건물 철거 작업을 시작했다. 대동빌라는 지진으로 건물 전체가 심각하게 파손돼 사용 불가 판정을 받아 그동안 건물 출입이 통제됐다.

전파 판정은 대성아파트와 경림뉴소망타운, 대동빌라, 해원빌라, 대웅파크 등 5곳에 내려졌다.

정부나 지자체가 아닌 주민들의 주도적인 참여로, 폐허나 다름없는 건물이 지진 이후 약 9개월만에 새단장을 준비하고 있다.

추진위는 주택을 담보로 금융권에 설정한 근저당을 스스로 해지하는 한편, 조합설립을 진행해 앞으로 자신들의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조합설립인가 이후부터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참여형 주택정비사업을 할 예정이다. 약 1억1천만원으로 알려진 공동주택 신축비용은 주민이 부담한다. 주택도시기금 저리융자 지원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철거비나 주민공동이용시설 설치비를 국비로 지원받는다. 포항시는 주민 분담금을 줄이기 위해 설계비 30% 감면과 원가 수준의 시공비로 맞춰 이재민들의 새 보금자리 마련에 발맞출 계획이다.

필로티 건축물 안전성을 강화하기 위해 국토교통부는 건축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지난 5일 입법 예고했다. 이르면 오는 9월부터 3층 이상 필로티 건축물 시공 과정을 동영상으로 남기도록 의무화한다는 내용이다.

포항 지진을 겪은 뒤 구조전문가들의 안전점검에서 설계도면과 다르거나 철근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 등 부실 시공 정황이 드러난 점을 바로잡기 위한 조치다. 이번 개정안으로 특수구조 건축물은 매 층이 올라갈 때마다, 3층 이상 필로티 건축물은 기초공사와 기둥, 바닥부재의 철근 배치를 끝낼 때마다 동영상을 촬영해야 한다.

3층 이상 필로티 건축물은 설계·감리 과정에서 건축구조기술사의 확인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 조항도 신설됐다.

현행 건축법에는 5층 이하 건축물은 건축사가, 6층 이상 건물을 건축구조기술사가 설계토록 하고 있다. 건축구조기술사는 건축사와 달리 안전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새로 만들어진 조항으로 필로티 구조 안전성을 더욱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와 함께 시공사가 공사 과정에 따라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해 보관하고 감리·건축주에게 제출하지 않으면 처벌을 받는 조항도 검토 중에 있다. 동영상 촬영이 ‘의무화’됐지만 조항을 어겼을 때 처벌 규정이 따로 없다. 이 외에도 필로티 건축물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국토부는 ‘필로티 구조설계 가이드라인’을 제작·발간했다.

이재민들의 여름나기는 관계기관의 협조로 조금 수월해졌다.

한국전력은 우선적으로 산업통상자원부와 협의를 거쳐 포항 지진피해 이재민 임시주거시설의 전기요금 감면 기간을 3개월 연장한다고 밝혔다.

포항지진피해지역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면서 한전은 ‘재난지역 특별지원 기준’에 따라 이재민 대피장소인 임시 가건물의 전기료를 복구 기간 최대 6개월까지 감면해주고 있었다. 최근 일부 임시주거시설의 전기요금 감면 기간이 만료됐고, 폭염으로 전기사용량까지 늘면서 이재민의 요금 부담이 증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포항시는 겨울철부터 한전과 수차례 협의를 진행, 추가 전기세 감면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요청해왔다.

한전은 이에 지진피해 복구의 경우 주택 재건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 포항 임시주거시설 이재민 대부분이 고령자와 저소득층인 상황을 고려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특히 최근 폭염에도 전기료 부담 때문에 이재민이 거주하는 임시 가건물의 냉방시설 사용을 자제하고 있어 이같은 조처를 했다.

한전 관계자는 “포항시 홍해읍 등 지진피해 이재민이 임시 거주하는 시설을 개별 방문해 특별재난지역 선포에 따른 전기요금 감면 기간 연장 안내활동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바름기자 bareum90@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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