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희정문화부장
▲ 윤희정문화부장

“여름휴가 어디로 가세요?”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인 요즘 가장 많이 주고받게 되는 질문이다. 휴가란 말만으로도 우리의 마음 한구석에 잠자고 있던 어떤 에너지가 분출됨을 느낀다. 하지만 막상 휴가 계획을 세우려고 하면 여러모로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꽉 막히는 도로, 어딜 가나 북적대는 인파와 비싼 물가, 누군가와의 갈등. 그쯤 되면 휴가는 곧 스트레스가 된다. 그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은 또다시 돌아온 휴가 시즌에 맞춰 또 한 번의 탈출을 꿈꾸게 된다. 휴가란 다른 그 무엇보다도 지겨운 일상 또 지겨운 ‘집구석’에서 벗어나는 해방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무언가 다를 것이라는 기대를 품는다.

휴가(休暇)란 무엇보다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다. 어떤 이들은 휴식을 위해, 다른 이들은 배움을 위해, 누군가는 재미를 위해 여름휴가를 보낸다.

‘혼멍’(혼자 멍 때리기) 휴가라는 것이 각광 받은 적이 있다. 일상에서 벗어나 산과 계곡, 바다나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집 안에서 혼자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것이 뇌 휴식에 좋다는 보고가 있기도 했다. 멍 때리면 그동안 뇌가 휴식을 취하기 때문에 오히려 창의력 강화에 좋다는 것이다. 2001년 미국의 신경과학자 마커스 라이클 박사는 사람이 눈을 감고 아무런 생각이 없는, 소위 멍 때리기 상태에 빠졌을 때 뇌의 특정 부위가 바빠지는 것을 뇌 PET 촬영 중에 발견했다고 한다. 이 부위를 전문 용어로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 Default Mode Network)’라고 한다. ‘멍 때려라!’의 저자인 신동원 성균관대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도 “멍 때리는 순간에 내측 측두엽, 내측 전두엽, 후측 대상피질 등 일명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 부위가 활성화된다”고 말한다.

몇 해전부턴 스테이케이션족들이 늘어나고 있다. 스테이케이션(STAYCATION)은 머무르다(STAY)와 휴가(VACATION)의 합성어로 집 혹은 집 근처에서 머무르며 여가를 보내는 휴가를 뜻한다. 흔히 알고 있는 ‘방콕’과는 의미가 다르다. 방콕이 집에서 텔레비전 등을 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위 그 자체에 목적이 있다면, 스테이케이션족들은 집 안에서 다양한 취미활동을 즐기거나 그동안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던 자기 자신이나 가족에게 오롯이 집중하는 시간으로 휴가를 보낸다. 이러한 변화는 휴가 그 자체가 적극적으로 자기를 계발하고 자신의 가치를 향상시키는 중요한 계기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셈이다. 오래전 ‘정해진 시간에 휴식을 취하는’ 단순한 개념으로부터 ‘휴식과 여가를 통한 재충전과 자기개발 및 창의성 배양 등의 기능을 수행하는 휴가’로 진보하고 있는 것이다.

혹시 아직까지 휴가 계획을 세우지 못했거나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면, 혹시나 틀에 박힌 뻔한 여행이 식상하다면, 집에서 머무는 휴가는 어떨지?

여름의 절정이다. 이제와 바캉스 계획을 짜자니 마음이 급해지거나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면 쉽게 생각하자. 올해 여름휴가 트렌드는 ‘혼멍 휴가’가 될 수도 있다. 가뿐한 몸과 마음으로 휴양은 물론 집에 머물며 가볍게 바람 쐬는 정도의 여행을 생각한다는 얘기다. 가족들과 즐기기에 좋고, 시끄럽지 않고, 빤하지 않은 여행지.

집 안에서만 휴가를 보내게 되니 가뿐한 몸과 마음으로 휴양은 물론 그동안 묵혀 뒀던 청소, 빨래, 화분, 밑반찬 등등 밀린 일도 차분하게 정리할 수 있어 좋다. 경제가 점점 나빠지고 물가는 오르는데 기름 태워가며 돈 쓰고 돌아다니는 부담도 일갈할 수도 있다.

소중한 휴가를 보다 편안하고 특별하게, 그리 거창하지 않더라도 소소한 재미와 의미를 더해주는 마법을 원한다면, 혼멍 휴가야말로 매우 이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