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방학이다. 그런데 방학도 예전같지 않다. 설렘, 기대같은 것은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다. 특히 고등학교 학생들은 더 그렇다. 왜냐하면 정부의 갈팡질팡하는 입시 정책 때문에 방학을 반납하고서라도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공부 장소가 학교가 아닌 사교육 기관이라는 것이다. 텅 빈 학교와 꽉 찬 학원!

물론 학교에서도 방학 보충 수업이라는 것을 한다. 하지만 그 효과에 대해서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교사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필자의 경험상 보여주기 식으로 진행되는 학교 방학 보충수업은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독(毒)이다. 동상이몽의 방학 보충수업이지만 그래도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눈치 보기다. 교사는 학부모와 관리자의, 그리고 학생은 교사의 눈치를 본다. 이렇게 시작부터가 잘못되었으니 과정이나 끝이 좋을리 없다. 학기 중 정규 수업 시간에도 수업에 대해 흥미를 못 느끼는 학생들인데, 방학 보충 수업에서는 어떨까?

방학은 고등학생들한테만 힘든 시기가 아니다. “아빠, 내 친구는 방학 때 유럽 간대!” 초등학교 딸아이 말에는 부러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필자는 그렇게 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아이가 필자를 위로한다.

“아빠, 괜찮아. 나는 외국 안 가는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신나게 물총싸움하기로 했어” 방학을 맞아 외국 여행을 안 가는 아이들이 얼마 없다는 것을 알기에 필자는 마음이 더 아팠다. 아이의 “괜찮아!” 소리가 계속 귓전을 맴돌았다. 눈치 보기 방학, 그리고 빈익빈 부익부 방학이 되어버린 교육의 슬픈 현실 앞에서 필자는 한없이 작아졌다. 방학(放學)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학생의 건전한 발달을 위한 심신의 피로를 덜어주기 위해서 실시하는 장기간의 휴가”(교육학 용어사전) “여름철의 가장 더울 때와 겨울철의 가장 추울 때 학교가 수업을 하지 않고 교사와 학생들이 모두 쉬는 것”(지식백과) 영어에서는 방학을 Vacation이라고 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방학은 휴가, 즉 쉬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지금 우리의 방학은 어떤가. 아이들은 물론, 교사, 학부모들의 힘만 빼놓는 방학! 시대가 바뀐만큼 방학이 지금과 같은 형태로 계속 되어야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종업식 때 대부분의 교사는 앵무새처럼 다음과 같이 학생들에게 알찬 방학이 되기 위한 방법을 안내한다. 계획을 세워라! 그것을 실행에 옮겨라! 평소 하지 못한 봉사활동을 하라! 필자는 이런 말을 하는 교사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아직 선생님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아이가 종업식을 하고 와서 자신의 방학 계획을 필자에게 말해주었다. 수행평가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성적이 나오지 않아 많이 속상해하던 모습을 기억하는 필자이기에 아이가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하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는 방학 때 더 열심히 해서 2학기 때는 자신이 목표한 점수를 꼭 얻겠다고 말하였다. 말하는 아이의 표정은 비장함을 넘어 숭고해 보였다. 그런 아이에게 필자는 “역설적 실책”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역설적 실책은 축구 선수들이 패널티킥을 실수하는 이유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용어이다. 요약하면 선수들은 패널티킥을 차기 직전 “왼쪽을 겨냥하되 골대만 맞추지 말자!”라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고 공을 찬다고 한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그 다짐대로 되어 골대를 맞추거나 아니면 골대와는 전혀 상관없는 방향으로 공을 차고 만다고 한다. 이런 실책은 큰 경기일수록 자주 발생한다고 하는데, 굳은 다짐이 오히려 압박감으로 몸에 잘못 전달되어 실수를 유발해서 나오는 일종의 ‘다짐의 역기능’ 현상이다. 방학 첫날 아이는 걱정하지 말라는듯 무거운 가방을 메고 방학 보충 수업을 위해 학교로 갔다. 뉴스는 연일 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폭염(暴炎)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