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철화편집부국장
▲ 정철화편집부국장

포항의 도시 이미지는 철강도시와 함께 ‘해병대’가 가장 먼저 연상된다. 포항은 해병대 제1사단 주둔지로 우리나라 해병대의 출발지이자 해병대 장병들이 반드시 거쳐가는 곳이다. 해병대에 지원하면 먼저 해병제1사단에서 혹독하기로 소문난 신병 훈련을 받으며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으로 태어나는 곳이다.

포항 해병대에서 헬기추락사고로 5명의 장병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 23일 해병제1사단에서 이들 장병들의 영결식이 열렸고 전국 해병대원들과 포항시민들은 비통한 마음으로 이들과 이별을 했다.

이들 장병들은 해병대가 새롭게 도입한 헬기의 시험비행에 나섰다가 이륙 직후 곧바로 추락해 목숨을 잃었다. 현재 사고조사가 진행되고 있으나 여러 정황으로 미뤄 기체결함이나 정비불량으로 인한 사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 다시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한 국가의 부실한 사회안전망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온 나라를 들끓게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헬기 추락사고와 관련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고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후속조치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현대사에 가장 비참한 사고로 기록되고 있는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국가 안전망 구축의 중요성이 누차 강조됐으나 여전히 제자리 걸음만하고 있다. 29명이 숨진 제천화재참사, 39명이 목숨을 잃은 밀양세종병원 화재참사 등 어처구니 없는 사고로 숱한 생명들이 허무하게 희생되는 안전사고가 계속 이어졌다. 그때마다 정부는 철저한 조사와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약속만 되풀이하고 있다. 또한 정부와 전문가들은 사고의 근본적 원인으로 사회 전반에 폭넓게 퍼져 있는 안전불감증이란 진단을 내리는 것도 여전히 똑같다. 안전 불감증은 전혀 안전하지 않은 상황인 데도 안전한 상황이라고 생각하는 상태를 이르는 것으로 대다수가 ‘설마 나에게’란 안일한 생각에서 기인한다.

1899년부터 5년간 고종의 궁내부 고문관으로 일했던 미국인 샌즈는 한국인의 무감각한 안전의식을 이렇게 지적했다. 그는 무슨 일을 할 때 위험에 빠질 확률이 20%, 위험에 걸려들지 않을 확률을 80%라고 가정하면, 미국 사람은 위험에 걸릴 20%에 해당될 것으로 생각하고 대비를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위험에 걸리지 않을 80%에 해당될 것으로 생각하고 위험을 곧잘 무릅쓴다고 했다.

우리의 일상은 늘 평안하고 안전한 것 같지만 실은 살얼음판을 딛는 것처럼 불안하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대형 기상재앙과 화재, 교통사고, 테러 등 우리의 일상 생활주변은 수많은 안전위험요소들이 도사리고 있고, 시시각각으로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더욱이 한 사람의 안전불감증이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의 생명도 앗아갈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시대에 살고 있다. 정부는 안전사고에 대한 접근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매번 대형 사고가 난 뒤 허겁지겁 대책을 강구하기에 앞서 근본적인 처방을 내놓아야 한다. 중증의 안전불감증 치료가 우선이다. 우리 스스로 안전에 대한 무관심을 버리고 안전에 대한 관심으로 자발적인 체험과 반복적인 안전교육을 통해 안전의식을 생활화하도록 하는 것이다.

포항은 지진이라는 자연재난을 겪었다. 지진 직후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국무총리와 행정안전부 장관, 여야 대표 등이 앞다퉈 포항 지진 현장을 찾아 지진복구와 안전도시 건설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이구동성으로 약속했다. 포항시는 지진 수습과 복구 대책과 함께 국립지진방재연구원과 국가방재교육공원, 국립 안전교육 종합체험장 건립 등을 건의했다. 이들 시설은 곧 시민들의 생활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각종 안전사고로부터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 교육시설이고 안전불감증을 치료하는 처방이다. 포항시민들에게 약속했던 정부의 안전도시 약속이 꼭 지켜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