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붕 스님·대한불교 조계종 대성사 주지
‘반야심경’에 보면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이란 법구가 있다.

이는 인간의 절대적인 본질을 표현한 말이라 하겠다.

인간 본질의 참된 마음, 즉 자성, 청정심이라 하는 그 본성은 비유하자면 겨울과 같다.

거울은 본래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비친다.

그러나 이 거울은 어떤 물체가 앞에 나타나야 비치게 된다.

물체가 사라지면 곧 없어져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거울에 물체가 비쳤다 하여 거울 자체에서 생한 실물은 없다. 그저 비친 것 뿐이다.

또한 물체가 사라졌다 하여 거울 자체에 없어진 것은 아니다. 그저 사라진 것 뿐이다.

이것을 불생불멸이라 한다.

거울에 아름다운 꽃이 비쳤다. 그 비친 영상은 아름답지만 거울 자체는 아름답지 않다.

이번엔 더러운 것은 아니다. 이것이 불구부정이다.

거울에 물체가 비쳤다 하여 거울 자체의 무게가 더함도 없고 물체가 사라졌다 하여 무게가 줄지도 않는다.

이것을 부증불감이라고 한다.

인간 본래의 참된 자성의 존엄은 어떠한 악도 이를 훼손시킬 수 없고 어떠한 선도 그 이상 이익되게 할 것이 없다. 즉 일체의 선악을 초월한 것이다.

인간의 마음이 거울같다고 하면 혹시 그 마음 속에 무엇인가 비치는 물체라도 있지 않을까 생각될지 모르나 거울이란 한갖 비유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포는 무라고 한다. 즉 ‘본래무일물’이라는 말이다.

사람이란 살아 있으니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이 웃고 울고 듣고 본다는 사실 자체는 범성이 다를 바 없다.

세존은 마음의 무를 깨닫고 부처님이 되셨다. 범부도 마음의 무를 깨달으면 곧 성불하게 된다.

이 무란 종으로 삼세를 관통하고 횡으로 사방에 통한다. 사방에 통하기 때문에 소의 소리도 듣고 닭의 소리도 들으며 즐거울 때 웃고 슬플 때 우는 것이다.

울어도 웃어도 아무 실체가 없고 실체가 없으면서 자유로이 행동하는 것이다.

이같이 자유자재한 마음을 곧 지혜라 한다.

이 지혜는 본래 누구나 다 구족한 것이다. 다만 망상과 집착에 사로잡혀 거울같이 청정하고 생사고락과 선악분별의 일체를 초월하여 자유 자재한 지혜를 증득하지 못할 따름이다.

    윤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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