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판문점 선언 이후 다방면의 남북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 국민들은 대체로 북한 당국에 대해서는 불신과 거부감이 강하다. 보수층에서는 북한에 대해 혐오감이 강하고 진보 층에서 그래도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남북 교류와 협력, 화해 시대를 앞둔 시점에서 우리는 북한 사회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우리가 북한 사회를 올바르게 알아야 대화와 협력을 지속할 수 있다. 남북 대화가 활발했던 시기인 2006∼2007년 빈번하게 북한 사람을 마주한 사람으로서 우리의 북한 사회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지적하고자 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북한사회가 완전히 자유가 완전히 박탈된 사회라고 생각한다. 북한은 자유가 없는 억압사회라고만 규정하고 있다. 북한사회도 과거 국가 배급제가 전면 실시되던 시절과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식량난 이후 유랑민들에게는 거주 이전의 자유가 허용될 수 밖에 없다. 북한 사회에도 수령과 당에 대한 절대 충성을 제외한 일상생활의 사적인 자유는 보장되고 있다. 남녀의 애정과 결혼, 이혼은 국가가 간섭하지 않는다. 시장 경제주변에는 소위 자유국가의 간통과 불륜도 증대하고 있다. 우리의 조직 깡패 비슷한 ‘놀랑패’도 늘어나고, 휴대폰 보급에 따른 ‘카더라 방송’도 유행하고 있다. 과거 남한의 권위주의 독재 시절의 우리와 비슷한 상황이다. 북한 주민들은 ‘생활총화’시간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자유롭게 개진하고 있다. 결국 북한 사회에도 집단주의적 통제 하에서도 개인적 사적 자유는 늘어나고 있다.

북한 사회에는 문화와 예술마저 공산당이 엄격히 통제하는 사회라고만 생각한다. 대체로 예술은 당 이념을 구현하는 수단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예술분야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다. 남한에서 부르는 일제 하의 흘러간 노래는 ‘계몽기 가요’라고 허용되고 있다. 북한 금강산 호텔 노래방에서도 김정구의 ‘눈물 젖은 두만강’과 백년설의 ‘나그네 설움’이 허용되고 있었다. 주민들 중에는 상당수가 남한의 노래뿐 아니라 영화도 돌려가면서 보고 있다. 북한 땅에서 한류는 단속하지만 그 확산 속도는 매우 빠르다는 것이다. 단속하는 보위부 간부들도 ‘날나리 풍’의 남한 영화와 노래를 접할 수밖에 없다. 탈북자 중에는 이미 북녘 땅에서 남한의 문화를 접하고 탈북을 결심했다는 증언도 있을 정도이다.

북한 관련 우리 교과서와 탈북자들의 증언은 북한 사회는 인정도 메마른 사회로 묘사하고 있다. 오호 담당제가 있어 고발이 일상화되고 갈등과 대립이 첨예한 사회라고 그리고 있다. 그러나 잠시나마 접해본 그들 사회는 대립과 경쟁보다는 협력이 중시되는 사회로 보였다. 내가 본 그들의 윗사람에 대한 예절은 우리보다 월등했다. 북한 땅에는 남존여비도 가부장제적 전통도 우리보다 강하게 남아 있었다. 그들은 수령 초상 앞이지만 나름대로의 제사도 지내고, 자식에 대한 교육열도, 치맛바람도 우리에 못지 않다. 여러 날 만남에서는 농담도 잘하고 헤어질 때는 눈물 흘리는 여성도 많았다. 전통과 봉건제적 잔재가 보전된 곳에 인정은 메마르지 않기 마련이다.

남북 화해 시대에 우리는 북한 사회와 사람을 잘 이해하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북한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너무 많다. 그들 역시 남한 사회에 대한 인식은 무척 왜곡되어 있다. 분단 70년의 세월이 초래한 비극이다. 그렇다고 우리는 북한을 ‘더디 가도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칭송할 수는 없다. 남북의 대화와 화해를 위해 우리부터 북한에 대한 객관적 이해가 필수적이다. 북한 사회도 사람도 변하고 있다.

동독의 마지막 총리 로타르 드 메지에르는 한반도 통일은 ‘북한 주민 선택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통일은 결국 남북한 주민들의 마음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