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혜명선린대 교수·교육학 박사
▲ 차혜명 선린대 교수·교육학 박사

덥다. 여름은 더워야 제격이라는 생각에도 더워도 너무 덥다. 한여름 무더위가 당연하다 해도, 오늘 겪는 불쾌지수는 초유라 느껴질 만큼 기록적이다.

폭염. 염천폭력의 한 복판을 지나고 있다. 곡식이 익으려면 한여름 땡볕이 필수라지만, 한낮 찜통은 고통스럽다. 흐르는 땀줄기와 씨름하느라 평정을 유지하기도 힘들지 않은가.

폭력은 무엇이나 인간에게 고통을 끼친다. 자연이 휘두르는 염천의 위세 앞에 인간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일 뿐이다.

어린 학생들이 학교 안팎에서 저지르는 폭력이 어른들을 걱정하게 한다. 배움터가 되어야 할 학교가 어쩌다 폭력의 무대가 되어 버렸을까. 가르치고 배우는 질서는 어쩌다 잃어버린 것일까. 학생과 학생 사이에 있어야 할 아름다운 협력은 언제 가르치려고 학생들 간의 폭력과 욕설을 느슨하게 생각한다는 말인가. 학생이 심지어 선생에게 휘두르는 폭력에 학교와 선생이 쉬쉬한다면 우리 교육은 그 자리를 어떻게 되찾을 것인가. 인권을 외치느라 사도는 팽개쳤다는 말인가. 학생을 보호하려고 선생을 함부로 하겠다는 소리인가. 배우는 자의 권리를 세워주겠다고 가르치는 이의 교권은 무시해도 된다는 것인가. 교육이 살아나려면 선생의 자리가 지켜져야 한다.

선생이 바르게 가르칠 수 있으려면 학생이 배우려는 태도로 다가와야 한다. 협력과 상생을 바르게 배우려면, 그에 걸맞는 마음의 준비가 있어야 한다. 다툼과 갈등, 경쟁과 질시는 폭력적 태도의 씨앗이 될 뿐이다. 이겨야 하고 짓밟아야 하며 거꾸러뜨려야 한다면 마음 속엔 이미 폭력의 불씨가 지펴진 것이 아닐까.

폭력을 없애기 위해서 교육을 바로 세워야 한다. 마음 속 폭력을 이미 키우고 있는 ‘과도한 경쟁’을 지워야 한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남을 이겨야 한다는 강박을 덜어내야 한다. 모두 함께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길러야 하며, 함께 만들어 가는 협력을 가르쳐야 한다. 남을 이기고도 내가 자라지 못하면, 이겨도 이긴 것이 못 되지 않는가. 더불어 살아가는 행복을 가르쳐야 한다. 상생의 보람을 길러야 한다. 과도한 긴장과 도를 넘는 경쟁이 심성을 비뚤어 지게 하며 낙오자를 낳는다. 조금씩 틀어진 태도가 정도를 벗어나면서 폭력이 싹트게 되어 있다. 상상 속 폭력은 실제 폭력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겉으로 폭력이 나타나기 전에 학교의 현장에는 폭력으로 이끄는 조건들이 즐비한 것이다.

경쟁, 다툼, 낙오, 좌절, 그리고 복수와 폭력. 그러니 겉으로 폭력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걷잡기도 어려울 수 밖에. 교육의 기본이 자리를 잡아야 한다. 학교가 본연의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 선생이 자신의 위치를 분명히 세워야 한다. 학생은 배움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슬기와 지혜를 배우는 즐거움이 넘쳐야 하며, 협력과 상생을 기르는 마당이 되어야 한다. 즐거운 배움이 넘치고 보람있는 가르침이 가득한 곳에 폭력은 설 자리가 없다.

교육이 반듯한 자리에 찾아갈 때에 학교폭력은 사라질 것이다. 벌어진 폭력보다 숨어있는 까닭에 집중해야 한다. 교육의 기초부터 살필 일이며, 가르침의 기본을 돌아볼 일이다. 견디기 힘든 폭염은 지나가지만, 뿌리깊은 폭력은 노력없이 근절되지 않는다. 교육의 제 모습을 찾아가는 일에 학교와 선생, 학생과 학부모가 마음을 합하여 나서야 한다.

학교에서 폭력이 싹튼다면, 교육은 그 자리를 돌아보아야 한다. 무엇부터 잘못되었을까. 그 뿌리는 무엇이었을까. 남 탓을 하기 전에 교육에 거는 기대부터 다시 살펴야 한다. 교육이 서면 폭력은 사라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