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선비들이 즐겨 사용하는 피서법 중 하나로 탁족(濯足)이라는 것이 있다. 산간 계곡의 물에 발을 담그고 더위를 쫓는 것이다. 가정에서 대야에 물을 떠놓고 발을 담그는 것과 비슷한 방법이다.

조선시대 선비는 유교사상에 젖어 몸 노출을 꺼려 발만 물에 담그는 피서법을 즐겨 사용했다. 발은 온도에 민감하고 특히 발바닥은 온몸의 신경이 집중돼 있으므로 발만 물에 담가도 온몸에서 청량감을 느낄 수 있다. 자연 속에서 탁족을 하니 건강도 좋고 정신 수양에도 좋았다고 한다. 탁족을 소재로 한 그림도 몇 점 남아 있어 당시 우리 선조들의 피서법을 잠시나마 상상해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임금도 창덕궁 후궁에서 찬물에 담근 수박과 참외로 더위를 피하는 것이 고작이다. 선풍기가 없던 시절이었으니 자연 순응적 방식에서 최고 피서법이다.

정약용이 쓴 소서팔사(消署八事)에서 나오는 8가지 피서법도 자연 순응의 이치를 활용하라는 뜻이다. ‘느티나무 아래서 그네타기’, ‘숲 속에서 매미소리 듣기’ 등 사소한 일상 속에서 여유로움을 가지며 더위를 물리치자는 논리다.

에어컨, 선풍기, 냉장고 등 더위를 식힐 문명의 이기가 없었기에 우리 선조가 취할 수 있는 피서법은 마음을 다스리는 수양법이 최고였을 것이다. 더위에 맞서 싸우기보다 더위를 제압하는 마음의 안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을 것같다. 때로는 바람이 살랑대는 대청마루에 누워 낮잠을 즐기는 것도 좋은 피서법이다.

무더위가 벌써부터 기승을 부리고 있다. 온 국민이 펄펄 끓는 가마솥 더위에 안절부절이다. 전국 곳곳에 내려진 폭염주의보는 아직 한참 남은 올 여름이 무척 덥고 지루할 거란 느낌이 들기에 안성맞춤이다.

예로부터 여름 더위에는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 했다. 날씨가 더울 때는 몸 안의 열이 바깥에 나가지 못해 쌓이기 때문에 뜨거운 음식을 섭취하여 몸의 더운 기운을 밖으로 내 보내야 한다고 했다. 여름철 몸보신을 위한 삼계탕 등이 이런 원리다. 무척 더울 것이란 올 여름은 이열치열의 각오로 시작하면 어떨까.

/우정구(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