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옥위덕대 교수
▲ 이정옥 위덕대 교수

두 돌이 채 안된 손자가 올 삼월부터 어린이집을 다닌다. 유달리 사람 좋아하는 아이답게 친구도 잘 사귀고 선생님도 잘 따른다고 해서 집단생활을 대견스럽게 잘한다 싶었다. 그러더니 자주 아프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전까진 잔병치레 한 번 없이 건강한 아이였다. 일주일에 연 삼일은 아프다고 하니 다니지 않는 것이 어떨까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몇 주 전엔 심한 기침으로 나흘간 입원하기까지 하여 애를 태우기도 했다. 여기저기 걱정을 풀었더니 이제껏 하지 않았던 집단생활에서 각종 병원균에 노출이 돼서라고 했다. 면역력을 기르는 이 과정을 거쳐야 튼튼해진단다. 시간이 지나면 점점 나아질 거라며, 도리가 없다니 할미는 그저 안쓰러워 할 뿐이었다.

그런 손자가 일주일 전에 우리집으로 피접(避接)을 왔다. 손과 발과 입에 수포가 생기는 수족구라는 전염병에 덜컥 걸렸단다. 어린이집 아이들이 집단발병을 했고, 다 나을 때까진 어린이집에도 갈 수 없단다. 더구나 연년생 여동생인 손녀에게까지 전염이 될까 염려돼 아들 내외가 궁여지책으로 피접을 생각한 모양이었다. 피접이란 병이 들었을 때 살던 집을 피해 다른 곳으로 옮겨 요양하던 예전 풍습을 이르는 말이다.

사정을 말하면서 아이를 일주일 정도 돌봐줄 수 있느냐고 조심스럽게 묻는 며느리에게 흔쾌히 대답했다. 바쁜 직장일이 핑계가 되어 주말에나 가끔 만나는 손자였다. 비록 아파서이긴 하지만 온전히 일주일을 먹고 자며 함께 지낸다는 반가움에 잘 돌보지 못하여 다칠까하는 두려움이 겹쳤다. 손수 삼시세끼와 간식을 제대로 해 먹여서 병을 이겨낼 수 있게 해주고 싶은 마음은 더 컸다. 퇴근길에 서둘러 장을 보며 온전히 손자를 위한 일주일을 살 채비를 했다. 원래 할미를 잘 따르던 손자인지라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생활을 그다지 낯설어하지 않았다.

한 주일을 참으로 즐겁고 신나게 손자와 지냈다. 다행히 아픈 기색은 별로 없이 잘 먹고 잘 자고 잘 노는 손자와의 일주일은 더할 나위없이 행복했다. 유난히 신명많은 손자는 병색 하나 내지 않고 온갖 재롱으로 할미의 작은 노고에 기쁨으로 답했다. 눈 마주치면 활짝활짝 웃고, 서툰 말로 할미를 불러댔다. 노래하면서 춤추며 사랑을 만들었다. 아침마다 일어나 밥 달라며 웃고, 해주는 밥마다 잘 먹었고 잘 쌌다. 이따금 투정도 예뻤다. 예쁜 짓 할 때마다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순간순간 모든 것을 잊지 않게 담아두고 싶었다.

‘양아록(養兒錄)’이라는 책이 생각난다. 16세기 조선의 양반인 묵재 이문건이 손자를 키우며 직접 쓴 육아일기이다. 손자 수봉의 출생부터 16세가 되던 해까지 시간적 순서에 따라 일기 형식의 시로 기록한 책이다. 묵재는 58세 늦은 나이에 대를 이을 손자를 얻고 매우 기뻤다. 손자가 가통을 잇는 군자다운 인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하면서 그의 성장 과정을 기록하고 싶었다. 조선 유일의 할아버지 육아일기에는 육아 과정의 구체적 상황과 체험, 감정 등이 매우 구체적이며 진솔하고 자연스럽게 표현돼 있다. 갓난아기가 젖을 빨고, 일어나 앉고, 이가 나고, 기고 성장하는 생육 과정이 매우 세밀하고 다정하고 또 때로는 엄격하다. 손자가 생후 6개월에 혼자 앉을 수 있게 된 뒤 스스로 일어나고 말문이 트여 할아버지가 글 읽는 모습을 흉내내는 등의 성장 과정을 묘사하는 시구엔 흐뭇함이 배어난다. 천연두나 이질 등의 큰 병에서는 손자의 안위를 염려하는 할아버지의 안타까움이, 다친 손톱이 다시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에선 넘치는 사랑이 절절하다. 자라면서 사춘기를 겪는 손자를 훈육하는 할아버지의 한숨과, 학습을 통하여 기울어진 가문을 일으킬 훌륭한 사대부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할아버지의 간절함도 있다. 이문건이 경북 성주 유배지에서 쓴 이 양아록을 모티브로 경북의 ‘할매할배의 날’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포손(抱孫). 아버지는 자식을 안지 않고 조부모는 손자를 안는다는 말이다. 자식보다 손주가 더 사랑스럽다는 것이 고금이 다르지 않음을 새삼 알겠다. 일주일 후 손자는 다 나았다는 병원의 확인증을 들고 집으로 돌아갔고, 다시 어린이집을 씩씩하게 다니고 있다. 며느리는 아이가 살이 포동포동 올랐다는 말로 시어미에게 고마움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