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주 위덕대 간호학과 교수

임상실습을 마친 학생들이 연구실로 찾아왔다. 학생들은 갓 씻은 듯 화장기 없는 맑은 얼굴로 앉아 담소를 나눴다.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연신 까르르 웃어대며 서로에게 눈빛을 쏘아대는 모습이 신선했다. 졸업을 앞 둔 그들에게서 간호사의 모습이 느껴졌다. 순간 나의 마음속엔 간호사 시절, 고뇌하고 부딪치며 행복했던 추억들이 스쳐갔다.

인생의 희로애락이 함께 했던 응급실 근무시절 어느날 모처럼의 조용한 새벽을 맞으며 인턴과의 대화에서 나는 ‘아름다움은 눈에 있는 것같다’고 했다.

모든 현상들이 눈을 통해서 들어오고 사람들은 매일 눈으로 보는 것들을 이야기하며 그리고 눈을 감으면 더 이상 볼 수도 느낄 수도 말 할 수도 없었다.

미스코리아의 수려한 이목구비, 여행지에서 보았던 산과 들의 풍경, 미술관의 우아한 벽을 빛내고 있는 그림을 보고 우리는 아름다움에 대해서 얘기하곤 했다.

때로는 심금을 울리는 아리아의 선율, 무희의 섬세한 리듬에 취해서 낭만과 고상함을 꿈꾸기도 했다. 인턴은 나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노처녀의 가슴에 사랑이 찾아오고 있는 것같다’고 했다.

그 때 정말로 사랑이 찾아오고 있었던 것일까. 지금 생각해보면 무언가 보여지는 것 이면의 의미를 찾고 싶었던 몸부림이 첫 봉오리를 맺고 있었던 것같다.

매일 병마의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과 죽음을 맞이하는 환자들, 그들의 가족들과 웃고 울고 다투다 보면 내 속의 기운이 쏙 빠져 달아나곤 했다.

그렇게 힘 빠지는 날에는 동료들과 함께 바다가 보이는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바다에 취하고 분위기에 취하기도 했다.

“난 결혼해서 딸 낳으면 절대 간호사 안 시킬거야.” “그래 험한 일 말고 고상한 일 시켜야지.” “우리 맨 날 피보고 살잖아.”

사람들은 환자의 피, 고름을 닦아주고 대소변을 치우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참 험한 일을 한다고 했다. 아무나 못할 일을 한다고 했다. 또 우리가 우리를 일러 억척스럽다고 했다. ‘내 모습이 억척스러울까?’내 눈에는 열심히 일하는 간호사만 보였다. 간호사가 하는 일이 억척스러운지, 고상한지는 알지 못했다. 난 나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었다.

따뜻한 녹차로 더위를 식하며 우리는 간호현장의 질 향상을 위한 방법에 대해 토론했다. 학생들은 ‘환자의 더러워진 시트를 갈아주고 배설물을 치우는 것이 과연 전문간호사의 모습입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어떤 행위가 전문적인가 비전문적인가에 대한 판단을 하기에 앞서 환자를 도와주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때를 생각해보라고 했다.

학생들은 ‘나의 미소에 환자가 같이 웃어줄 때, 어떤 일이라도 나의 도움으로 환자가 좋아지고 고마워할 때’라고 대답했다. 가슴속에 촉촉히 물기가 차오르는 것 같았다.

간호현장을 떠난 지 어언 십년, 나는 간호사로 일하면서 내가 경험했던 현상, 생각과 느낌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주곤 한다. 학생들은 책속의 지식보다 살아있는 경험에 더욱 흥미를 보였다. 부끄럽지만 이제 내가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의 의미에 눈뜨게 된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을 것같다.

전문성에 대한 다양한 정의들이 존재하지만 전문성을 빛나게 만드는 것은 진정한 철학과 신념을 가지고 임하는 것이다.

‘그것이면 족하다. 누군가를 도와줌에 있어 내 행위의 귀천을 먼저 따진다면 그건 진정한 도움이 되기에는 부족하다.’

내가 이렇게 말하지도 않았건만 현명한 학생들은 이심전심으로 알아차리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아름다움이란 존재하는 사물들이 자신의 고유한 모습대로 살아가는 모습이며 의연함일 것이다.

물기를 머금은 바람이 한줄기 비가 되어 목마른 대지의 갈증을 해소시켜 줬다. 또 다른 세계를 잉태하는 시간 속에 어스름이 깔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