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준섭<bR>변호사
▲ 박준섭 변호사

천리포 수목원은 칼 밀러가 평생에 걸쳐 태안반도에 만든 수목원이다. 그는 1945년에 패전국 일본의 식민지였던 나라를 방문하러 인천에 들어온 미군에 소속돼 한국을 처음 찾았다. 그는 이후에 6·25전쟁에도 참전했다가 한국의 아름다움에 반해 휴전 이후에도 한국은행에 근무하면서 한국에 남았다. 그는 후에 귀화해 민병갈이라는 한국이름도 얻었다.

한국은행 고문직에 있던 그가 1962년 한국인 동료를 따라 만리포해수욕장을 찾았다가 딸의 혼수비용을 걱정하는 한 노인의 딱한 사정을 듣고는 그를 돕는 셈치고 소유하게 된 6천평을 수목원으로 꾸몄다. 천리포 수목원이 탄생한 연유다. 천리포 수목원은 그 후 15년간 현재규모의 18만평으로 늘었다. 한국 최초로 민간이 설립한 수목원인 천리포 수목원은 국제수목학회가 아시아에서 원예학적으로 가장 잘 가꿔진 수목원이라는 의미에서 명예훈장을 수여한 곳이다. 또 미국 호랑가시협회가 프랑스 이외에는 처음으로 호랑가시수목원 인증패를 수여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천리포 수목원의 자랑은 무엇보다도 목련이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목련이 약 500여종이 되는데, 그 중 400여종이 이 수목원에 있다. 단일 수목원으로는 세계 최다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목련은 중국에서 건너온 백목련이고 진짜 한국 목련은 제주지방의 자생종 하나뿐인데 일명 고부시 목련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우리는 자목련, 자색목련, 태산목, 일본목련, 산목련 등이 우리가 흔히 아는 목련의 종류이다. 그런데 천리포 수목원에는 신화 속 여신의 이름을 단 목련 ‘아테네’, 해질녘이면 큰 연못에 촛불을 켜듯 빛난다는 ‘돈나’, 예술적 정취를 뽐내는 아시안 아트스트리, 옐로우버드, 재미있는 이름의 ‘스타워즈’, 고 민병갈 원장이 숙모를 그리며 이름 붙였다는 ‘엘리자베스’ 등 외국에서 수입한 수백 종류의 목련이 있다. 특히 비욘디 목련은 국제자연보전연맹의 멸종위기생물목록에 올라가 있을 정도로 원산지인 중국에서도 보기 힘든 목련이고 불타는 듯한 붉은 색을 가진 불칸은 봄이 되면 방문객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목련이다.

‘정원소요’(이동협 저)라는 책에 실려 있는 스트로베리 크림이라는 목련의 사진을 본 것이 필자가 천리포 수목원의 목련을 알게 된 계기가 됐다. 흰바탕에 엷은 분홍빛의 목련을 사진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아득해 황홀한 감동에 젖었고 한동안 책의 사진을 들고 다니면서 천리포 수목원을 방문할 날만을 기다렸다.

지난 2010년 봄, 그해 드디어 벼르던 천리포 수목원을 처음으로 방문할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너무 늦은 봄의 방문인지라 그 화려한 수선화도, 기대했던 스트로베리크림도 볼 수 없었고 별목련의 마지막을 볼 수 있었을 뿐이었지만, 수목원에 바로 붙어 있는 낭새섬이며 수목원의 다른 나무들을 보며 역시 천리포 수목원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이라는 칭찬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고 느꼈다. 그 후 봄이 되면 가족들을 데리고 목련을 보러 천리포 수목원을 방문하곤 했다. 그리고는 언제부터인가 천리포 수목원에 있는 그 화려한 목련들을 내 고향 대구에 심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하게 됐다.

최근에 대구시가 다시 1천만 그루의 나무를 심는 사업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번 1천만 그루의 나무를 심을 때에는 더운 대구에 나무를 심어 온도를 낮춘다는 것에 집중했다면, 이번에는 특별한 주제를 가지고 특별한 수종의 나무를 심어 도시공간을 디자인하면 좋겠다. 그 특별한 나무로 목련은 어떨까? 목련은 대구의 시화이기도 하니 화려한 목련으로 대구를 가득 채워 대구의 상징으로 만들어도 좋으리라 본다. 외국수종의 목련은 꽃이 화려하고 향이 좋을 뿐만 아니라 꽃도 오래간다. 백목련처럼 꽃이 질 때의 초라한 느낌도 없다. 매년 3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련 하나를 보기 위해 그 먼 태안반도의 천리포 수목원까지 기꺼이 방문한다. 천리포 수목원에 비해 대구는 KTX가 있어 입지도 좋으니, 전국의 관광객들이 목련이 피는 봄날을 손꼽아 기다려 방문하는 목련향이 가득한 문화·예술의 도시 대구를 꿈꿔도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