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휘<bR>논설위원
▲ 안재휘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 부회장을 만났다. 인도 삼성전자 공장 준공식에서 이 부회장을 만난 문 대통령은 “한국에서도 더 많이 투자하고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 장면을 놓고 가장 크게 놀란 측은 진보진영인 것같다. 진보논객들이 ‘박근혜, 최순실과 함께 국정농단과 정경유착의 주범’이라는 수식어를 붙여가며 만남의 부적절성을 부르댄다. 국민들이 못 볼 장면까지 보게 됐다고 한탄하기도 한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진보성향 시민단체들을 겨냥해 근본주의적 성향과 개혁조급증, 경직성을 지적했다가 호되게 씹히고 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별도합산 토지 종부세를 빌미삼아 동네북 취급이다. 진보인사들은 J노믹스의 핵심인 소득주도 성장정책을 이끌어 온 대표적 인물인 홍장표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경질에 아예 ‘목이 잘렸다’면서 분노한다.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 최저임금을 10.9% 인상해 시간당 8천350원으로 의결한데 대한 반향이 심각하다. 시중에는 벌써부터 ‘문재인 정부도 경제에서 실패하면 끝장’이라는 걱정이 심심찮게 나돈다. 단언하기는 조금 이를지 모르지만, 일련의 사태는 정부의 경제정책에 문제가 없지 않음을 여실히 반영한다.

최저임금을 올려서 소득주도 성장을 이끌어내겠다는 이론은 좋은 정책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성과를 담보하기 위한 절대조건이 있다. 경제주체들 모두가 변화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정부는 그렇게 만들지 못하고 있다.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문재인 정부의 경제팀은 최저임금은 덜컥 인상해놓고, 노동수요를 증가시키는 정책을 유효하게 창출해내지 못했다. 그 무책임 때문에 이 난리가 났다.

최저임금 노동자를 고용하는 계층은 소상공인들, 소위 ‘먹이사슬의 차상위 계층’이다. 이들의 지불능력을 늘려주는 것이 정책의 핵심이 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 정권은 소상공인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기만 하고 있다. 내수 진작을 위한 거시정책도 없다. 상가 임대료는 전혀 낮아지지 않았다. 임차인이 대낮에 식칼을 들고 건물주를 노려 쫓아다니는 판이다. 재벌 대기업이 수조 원의 사내 유보금을 풀도록 하는 효과적인 정책수단도 없다.

집권여당은 이제 와서 “최저임금 인상에 부담을 느끼는 영세 소상공인·자영업자 보호 대책에 국회가 발 벗고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인들이 정말 그런 묘책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경험칙에 따르면, 국회는 고작 중소상공인들에게 인건비 일부를 당분간 지원해주는 미봉책이나 만들어 내놓고 업적 선전에나 몰두할 공산이 크다. 벼랑 끝에 몰아놓고 혈세를 털어서 입에다가 사탕 몇 개 물려주는 짓이야말로 정치가 국민에게 하지 말아야 할 천박한 하지하책(下之下策)이다. 오죽하면 영세 소상공인들이 길거리에 나서서 ‘불복종 운동’을 벼를까.

영세 소상공인들도, 아르바이트로 하루하루 살아내야 하는 빈곤층도 모두 을(乙)이다. ‘최저임금’ 갈등의 현장은 잘 나가는 대기업과 진보 정치인들과 귀족노동운동가를 포함한 ‘갑(甲)’들이 펼쳐놓은 격투기장이 됐다. 도무지 빠져나갈 길이라곤 없는 8각의 옥타곤(Octagon) 철망 안에서 영세소상공인들과 싸구려 노동판을 기웃거려며 살아가는 서민들만 갇혀 있다. 힘없는 을(乙)들끼리 전쟁 붙여놓고 제 앞길만 살피는 윤똑똑이 고관대작들은 과연 누구인가.

문재인 대통령은 왜 이재용 삼성 부회장을 만나 일자리를 주문했을까. ‘소득주도 성장론’의 한계를 상징하는 회동은 아니었을까. 서민들은 지독한 불경기와 씨가 말라가는 일자리에 비명을 지르는데, 문 대통령은 경제지표 흔들리는 사태만 한사코 걱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최저임금을 왕창 올리면 경제가 잘 돌아가리라는 무지개 꿈은 언제까지 유효한가. 막다른 골목길에서 울고 있는 개살구들이 한없이 슬퍼보이는 나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