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순물 함유가 우려되는 고혈압치료제 발사르탄으로 인한 혼란이 확산되고 있다. 지역의원과 약국에는 문의가 폭주하고 일부 의료기관의 업무가 마비되는 사태까지 벌어지는 등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의 ‘회수’ 발표 후폭풍이 거세다. 제약업계의 손실도 수백억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난립상태에 다다른 복제약(제네릭) 생산 판매시스템을 혁신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견해를 주목해야 할 때다.

식약처는 최근 중국 ‘제지앙 화하이’ 가 제조한 원료의약품 ‘발사르탄’ 사용이 확인된 115개 고혈압 치료제품목(54개 업체)에 대해 판매중지 및 제조중지, 회수절차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에 고혈압 치료약을 복용하고 있던 전국의 수많은 환자들이 처방약의 ‘발사르탄’ 포함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병·의원 및 약국을 찾는 일이 폭증하고 있다.

해당 고혈압치료제를 복용하고 있는 환자는 17만8천536명에 이른다. 대형병원은 물론 일반 병·의원까지 대부분의 의료기관들이 업무가 마비될 정도에 이르고 있다. 급기야 보건복지부는 의료기관에서 요양기관업무포털을 이용해 환자에게 개별적으로 연락하라는 지침을 전달했다.

중국 회사가 발사르탄 생산공정 변경과정에서 발암물질인 NDMA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유럽의약품청(EMA)에 보고한 게 혼란의 시작이다. EMA는 정밀검토 끝에 예방 차원에서 이 회사의 원료로 발사르탄을 제조하던 제약회사에 생산중단 및 리콜을 요청했다. 캐나다·일본·홍콩·타이완에 이어 우리나라의 식약처도 발 빠르게 유사한 조치를 취했다.

EMA가 리콜을 요청한 품목은 수개에 불과하고 영국은 두 회사의 8개 제품만 판매 중지 대상이다. 하지만 식약처가 제조와 판매를 중단한 발사르탄 제품은 54개 회사의 115개 품목에 달한다. 왜 이렇게 특히 우리나라에서 혼란이 극심할까. 지난 2000년대 초반, 당시 의약분업을 강행하면서 대체조제가 가능하도록 제네릭(복제약) 숫자를 크게 늘린 것이 화근이다.

우리나라는 생물학적동등성(생동성) 시험 기반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편법적인 위수탁 또는 공동생동 방식을 통해 단 하나의 제조회사에 의존하는, 전 세계 의약품규제 역사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운 희한한 제네릭 생산허가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현재 생동성을 인정받은 품목 중 직접 생동성 시험을 실시한 경우는 20%도 안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동이 이번 고혈압치료제에 머물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게 더 심각한 문제다. 제아무리 값이 싸다 해도 불확실한 약을 마구 쓰게 만드는 현재의 시스템은 안 된다. 부실한 검증을 거치는 복제약으로 무한경쟁을 유도하는 위험한 구조는 하루빨리 혁신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