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호의 살며 생각하며 (21)

2002년 무렵 다들 민주주의가 무르익어 간다고 생각할 때 문제가 간단치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민주주의란 과연 무엇인가, 하고 물으며 자명한 것 같은 이것이 아주 어려운 문제로 둔갑하는 것이다.

1990년을 전후해서 세상이 한 번 용트림을 할 때 무엇이 좌고 무엇이 우인지도 간단치 않게 됐다. 좌인 것이 언제까지나 좌인 것이 아니요, 우도 그러했던 것이다. 어떤 정책이, 태도가, 세상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진보냐 하는 것도, 지키는 보수냐 하는 것도 그때부터 이미 매 순간 하나하나 잘 짚어 봐야 할 문제가 되었다.

지난 두 정부를 거치며 민주주의에 목이 말랐다. 아니, 둘 다 선거로 정당성을 가지고 집권했는데, 민주주의가 없었다는 말씀이냐? 무슨 망발이냐?

조르조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는 ‘주권 권력과 발가벗은 생명’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여기에 이런 표현이 있다. “근대 민주주의가 포스트 민주주의적 스펙터클 사회 속에서 점차 쇠퇴하면서 전체주의 국가와 수렴되는 현상”, 또 “민주주의와 전체주의는 내적으로 결탁되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포스트 민주주의적 스펙터클 사회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하면 바로 우리 사회 같은 정치 현상을 두고 말하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말하자면 ‘우리는’ 민주주의를 하노라고, 떠들썩하게 보여주는 것이 많은 사회, 선거가 수도 없이 빈번하게 치러지고 그럴 때마다 언론이 자지러질 듯이 난리법석을 피우고 거리에는 온갖 구호와 이상이 난무하고, 결과를 접하고는 엎드려 용서를 구하기도 하고 환호성을 지르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국민’을 하늘처럼 높이 떠받드는 것 같은 사회, 민주주의가 범람하는 사회인 것 같은데, 사실 그 국민은 자유롭지 못하고, 멱살이 잡혀진 것처럼 체제가 무서울 수밖에 없는 사회, 이런 것을 가리켜 이 스펙터클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어쩐지 ‘익숙한’, 지긋지긋한 전체주의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바로 지금 우리 사회가 전체주의적이라는 식의 언어도단을 행하자는 것은 아니고 지난 두 정부에서 신물나게 보았듯 민주주의 형식을 어엿하게 충족시키는 것 같아도, 말짱 도루묵, 하늘같아야 할 국민은 감시와 통제와 여론 호도의 객체로 취급되고 마는 것이다.

‘호모 사케르’는 현대 정치에, 사람들의 권리를 통제할 ‘예외 상태’가 너무 많이 등장하는 것에 주목한다. 긴급조치가 필요하고, 비상사태고, 유사시에 해당하고, 공공의 안녕과 질서가 해로워질 수 있는 때가 너무 많은 것인데, 이 ‘예외상태’가 상시화 되고 규칙화 되면서 국민은 그 공인된 헌법적 권리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는 늘 어떻게든 ‘처분되고’ 만다.

지금 다시 민주주의를 낙관하는 사람들이 많다. 향후 십 년은 괜찮으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미래는 늘 불투명하다. 또한 ‘벌거벗은 생명’으로서 사람들, 국민들은 어느 시대든 녹록할 수가 없다.

‘벌거벗은 생명’, 호모 사케르, 이 말처럼 정치 앞에, 제도 앞에, 권력 앞에 놓인 백성들의 상황을 투명하게 표현해 주는 말도 없다.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