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고율의 관세폭탄 이어
EU는 ‘세이프가드’ 추진
포스코·현대제철 판재류
유럽 수출 90% 차지 ‘타격’
중견업체 위협 ‘시간문제’
정부 적극적 역할 나서야

▲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관세 폭탄에 이어 EU의 세이프가드가 발동되면서 포스코와 현대제철을 비롯한 포항 철강공단의 경기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사진은 9일 오후 영일대 해수욕장에서 바라본 포스코의 모습. /이용선기자 photokid@kbameil.com

미국에 이어 EU(유럽연합)까지 한국산 철강에 대해 무역장벽을 세우기로 해 철강도시 포항에 비상이 걸렸다.

9일 업계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6일(현지 시각) 한국산 철강에 대해 세이프가드(긴급 수입제한)를 이달 중 잠정 발동하기로 했다. EU 집행위는 미국이 지난 3월 고율의 철강 관세를 부과하자 “수출이 막힌 한국산 철강 등이 유럽으로 덤핑판매될 우려가 있다”며 3월 말부터 세이프가드 조사를 벌여오다 지난 5일 찬반 표결을 했다.

EU 28개국 중 25개국이 찬성표를 던져 미국의 보호무역에 맞서 EU도 자국의 이익을 지키겠다며 단합한 것이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철강도시 포항이다.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관세 폭탄으로 이미 큰 타격을 받고 있는 포항철강공단 업체들에겐 EU의 세이프가드 발동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이미 한국은 미국의 철강 관세 부과 대상에서 빠지는 대신 미국 정부가 요구한 수출 쿼터제(2015~2017년 연평균 수출량의 70%)를 수용한 상태다. 이 때문에 포항철강공단 내 강관업체인 넥스틸의 경우 500억원을 투입해 미국으로의 공장 이전을 서두르고 있다. 국내에선 도저히 돌파구가 없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11면>

한국의 대미 철강 수출은 지난 2월 30만8천850t에서 5월 15만865t으로 반토막이 났다. 한국무역협회는 올 하반기 철강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7.5% 감소한 161억달러로 전망하고 있다. 여기에 EU까지 세이프가드를 발동하면 충격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한국이 유럽에 수출한 철강은 313만t(약 3조원)으로 인도·터키·중국에 이어 4번째로 많다. 미국으로의 주요 수출품은 세아제강, 넥스틸 등이 생산하는 강관류이고, 유럽 수출품목 90%는 포스코·현대제철 등이 생산하는 판재류다. 미국의 관세로 세아제강과 넥스틸 등이 타격을 받았다면 이번 EU 철강관세 조치로 인해 피해를 입는 업체는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이다. 유럽 자동차 업계에 수출하는 자동차강판과 판재류 등이 대상이다.

유럽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EU 집행부의 철강관세는 미국의 조치와 비슷하지만 약간은 차이가 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U 집행부는 회의를 비공개로 전환해 정확한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다만 유럽에 정해진 물량 이상을 수출할 경우 25% 관세를 매긴다는 점과, ‘국가별’쿼터가 아닌 ‘글로벌’ 쿼터로 3년 평균 물량을 기준으로 한다는 점은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내용이다.

현재 미국이 자국 내 수입되는 통관 기준을 바탕으로 물량을 매기고 있는 반면, EU의 경우 국내 선적 기준으로 물량을 매긴다는 소문이 나면서 국내 철강업계에서도 선적 바람이 불고 있다. 선적 기준이 되는 경우 먼저 배를 띄우는 업체 물량이 우선되기 때문에 일단 제품을 싣고 배부터 띄어놓고 보자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국내 선적 기준이 아니더라도 일단 배를 띄운 경우 공해상에서 대기할 수 있고, 계약상 물량은 보내야 하기 때문에 실제 선적 기준으로 판명날 것에 대비해 선적부터 하고 보자는 바람이 확산되고 있다.

EU 조치로 포스코·현대제철 뿐만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 국내 중견 철강업체에도 파장이 미칠 전망이다.

냉연을 생산하는 동국제강이나 동부제철 등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동국제강은 절대량면에서 포스코와 현대제철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전체 판매량에서 차지하는 수출 비중이 높다. 동부제철 역시 미국 수출에 이어 유럽 수출길이 막힐 경우 동남아, 러시아를 제외하면 수출 판로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철강업계는 수요업체들과 연계해 EU를 설득할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현재 삼성전자 등 국내 주요 업체들이 미국 공장에서 수입하는 철강 제품에 한해 관세를 면해주도록 미국 상무부를 설득하고 있는 경우와 유사한 사례다. 포스코나 현대제철도 유럽 수출 물량들이 대부분 자동차나 가전과 연계된 물량인 만큼 수요처와 EU 집행부를 함께 설득하는 방안이 최선책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EU의 선적 기준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최대한 빨리 제품을 선적해 배를 일단 띄우고 보자는 분위기”라며 “대부분의 수출 물량이 유럽 국가들의 기타 소비재 시장 등 자국 산업과 맞물려 있는 만큼 정부가 나서서 설득 작업에 참여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명득기자 mdkim@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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