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하 석

가래잎나무, 물푸레나무, 엄나무들의

뿌리 사이 검은 흙들 부드럽다 물기에 젖어

돌을 녹이고, 깡통들을 녹여 흙은 스스로를

한없이 넓혀놓는다. 물줄기 곤두박질하는

홍류동 계곡의 물소리에 모든 시간들 씻어 보내며

바위에 새겨놓은 이름들과 시들, 물과 바람과 어둠과

비에 닳아간다. 물소리 흙 속에 스미며

비닐과 수은, 철제 부스러기들의 귀를 먹이고

흙들 그것들 감싸안고 얼리고 녹이며

봄과 여름 또는 가을을 가리지 않고

초목들의 끝 가지까지 물에 실어 보낸다

마침내 봄 하루의 바람, 물소리와 바위와

흙 밑에 얽힌 모듬 뿌리만의 것인

가야산

산의 넓은 생명 오지랖을 예찬하는 시인의 목소리가 정겹고 섬세하다. 물기에 젖은 산은 나무들에게 생명력을 키워주고 깡통, 철제 부스러기 같은 문명의 찌꺼기들마저도 품고 정화시켜 낸다는 시인의 인식에서 넉넉한 자연의 오지랖을 느낄 수 있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