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야권을 중심으로 개헌론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야권의 개헌론은 시작단계에서부터 순수성 논란이 일고 있다. 대통령 개헌안을 ‘지방선거용’이라고 반대하던 주장은 선거결과 야권의 참패로 무참히 부정됐다. 그런데도 야권이 들고 나온 개헌안 골격에는 여전히 ‘지방분권 개헌’ 정신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민심을 어떻게 읽고 있는 것인가. ‘지방분권’ 진정성이 없는 개헌론으로 무슨 ‘국민개헌’을 하자는 것인가.

자유한국당 김성태 대표권한대행은 기자들과 만나 “야권이 제왕적 권력구조를 종식하기 위해 개헌 논의의 방점을 꼭 찍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른미래당 김동철 비대위원장도 “만악(萬惡)의 근원인 제왕적 대통령제를 청산하고 선거 비례성 대표를 강화하기 위해 개헌과 선거제도를 개편해야 한다. 이는 20대 국회의 존재 이유”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변인들도 합세했다. 한국당 신보라 원내대변인은 논평에서 “민주당은 연내 개헌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하라”고 했고, 바른미래당 김수민 원내대변인도 “민주당은 즉시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안 협의에 착수해 연내 국민투표까지 마무리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하라”고 촉구했다. 같은 당 김관영 원내대표는 8월중 개헌안 합의, 9월에 국회 본회의 처리, 12월 국민투표라는 로드맵을 내놓았다.

보수 야권이 합심해 개헌 불씨를 다시 댕기는 것 자체가 마뜩지 못할 이유는 없다. 다만 이런 목소리가 여권의 ‘완승’으로 끝난 지방선거 이후 정국 주도권 다툼을 위한 선제공격 개념에 머무는 배경이 문제다. 특히 ‘지방분권 개헌’에 반대 입장을 견지해 지역민들을 완전히 등 돌리게 한 치명적인 패착을 두고도 선거 이후 사과 한 마디 없이 다시 ‘개헌론’을 들고 나오는 모습에서는 후안무치마저 느껴진다.

단지 대통령의 권력을 빼앗아서 국회권력에 보태자는 수준의 권력분산 주장이라면 국민들이 그 저의를 결코 용납할 까닭이 없다. ‘감 놔라 배 놔라’ 지방정부의 밥상까지 시시콜콜 참섭하는 중앙정부의 케케묵은 권력을 그냥 두고서 대통령 권력만 쪼개는 개헌에 무슨 ‘국민개헌’의 참뜻이 있나. 진정 국민을 위한 개헌이라면 ‘지방분권형 개헌’으로 시작하는 것이 맞다.

보수 야권이 종래 해왔던 것처럼 지역민들의 염원을 외면하고 정파적 이익만을 앞세운 개헌을 거듭 주장하는 행위는, 지방선거 승리를 바탕으로 ‘적폐청산’과 ‘개혁입법’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정부·여당에 대한 민심의 지지쏠림 현상을 가속화시킬 따름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개헌이든, 선거구제 개편이든 ‘지방분권형 개헌’ 정신으로 재무장하고 출발하라. 아직도 민심의 소재를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는 보수 야권의 무딘 인식이 통탄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