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희룡서예가
▲ 강희룡서예가

지금 한국의 기후는 아주 급격한 변화 속에 있어 여름이 시작되면 갑작스런 폭우와 폭염이 기승을 부린다. 지구의 온난화로 여름 장마전선도 최근엔 따로 발달하지 않고, 국지적으로 집중호우가 쏟아지며 횟수와 세기, 양에 있어서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며칠 전 화기(火氣)가 극히 왕하고 태양의 양기는 극에 달한다는 24절기의 하나인 하지(夏至)도 지나서 며칠동안 낮 기온이 35~36℃를 넘나들었다.

한국 속담에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는 말이 있다. 무더운 여름일수록 무더위를 이기기 위해 더운 음식을 먹거나 몸을 덥게 해야 한다는 뜻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열치열은 어떠한 의학 서적에도 보이지 않는다. 혹자는 동의보감에 나온다고 하는데 동의보감에는 덥다고 찬 음식만 먹으면 여름 감기에 걸린다고 하였을 뿐, 날이 더울수록 뜨거운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내용은 없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권위있는 의서라는 ‘황제내경’에도 ‘추위는 더위로 다스리고 더위는 추위로 다스린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추위로 생긴 병에는 더운 성질의 약을 사용하고, 더위로 생긴 병에는 차가운 성질의 약을 써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열치열과는 정반대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더운 약재를 써서 열을 잡기도 하지만 이것은 열증을 가장한 한증을 치료하는 방법일 뿐 진짜 열증을 치료하는 방법은 아니다.

‘정조실록’에는 이열치열이라는 말이 세 번 나온다. 이열치열은 ‘이수치열(以水治熱)’의 반대말이다. 열기가 일어나는 곳에 찬물을 끼얹으면 열기가 금방 사라지지만, 열기에 열기를 더해봐야 별다른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지난 왕조국가에서 역적을 다스릴 때 역적의 반대파 사람에게 처리를 맡긴다면 피의 살육이 벌어진다. 반면 역적과 같은 당파 사람에게 처리를 맡기면 비교적 온건하게 처리한다. 이것이 바로 더위로 더위를 다스리는 이열치열이다. 윗글의 예를 보면 병신년의 역적은 정조의 대리청정을 방해한 홍인한 등을 말한다. 당시 홍인한의 단죄를 담당한 사람이 대사헌 김상익이다. 두 사람 모두 노론이자 왕실의 인척이다. 이 때문에 ‘정조실록, 즉위년 7월 1일’에 ‘사간 신응현이 상소하여 대사헌 김상익은 홍인한과 한 통속이니 김상익에게 홍인한의 죄를 다스리게 한다면 이열치열과 다름없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로보아 이열치열의 속뜻은 온건한 처리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할 수 있다. 이 이열치열의 오해에서 빚어진 잘못된 처방은 가끔 끔찍한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조선 후기 문인 홍우채가 19세에 요절한 아들 홍계영을 애도하며 지은 제문인 관수재유고(觀水齋遺稿)에 실려 있다. 내용인 즉, 아들이 병을 앓던 초기에 의원의 말만 믿고 더운 약제를 썼다. 그러나 이 처방은 결과적으로 증상을 악화시켰다. 그렇지 않아도 몸속이 열기로 가득하여 배가 부었는데 더운 약제를 썼으니 당연한 결과였으며, 차가운 약제를 쓰지 않고 믿었던 이열치열의 처방이 원기를 손상하여 아들의 죽음을 초래하였다며 홍우채의 후회를 기록하고 있다. 당시 홍계영은 재주가 뛰어나 8세 때 지은 유명한 연적명(硯滴銘)이 있으며, 작품으로 국문가사 희설가(喜雪歌)를 남겼다. 문중에서 천리지구(千里之駒)를 얻었다고 기대하는바 컸으나 병으로 19세에 요절하였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뜨거운 것을 유난히 좋아한다. 뜨거운 음식을 먹고 땀을 흘리면 일시적으로 시원한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뜨거운 음식은 식도암과 위암, 그리고 치아 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의사들은 하나같이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올여름 더위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열치열에 대한 잘못된 믿음으로 건강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주의가 필요하다.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까지 깃든다면 바람직할 것이다.